검은 망사 장갑 / 김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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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30회 작성일 20-12-28 03:42본문
검은 망사 장갑 / 김혜순
깜깜한 밤중에 벌판 한가운데서 불길이 치솟는다
불타는 집이 붉은 물로 빚은 한 송이 장미 같다
밤마다 한가운데 환한 배 한 척 같다
하늘로 떠오르는 불타는 상여 같다
그러나 환한 저 꽃 한 송이 속에는
여자를 죽이고 죽으려는 남자가 타오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불 꺼진 집은 더러운 걸레 뭉치
같다
너를 내리칠 때 피 묻은 망치에 달라붙던 머리칼 뭉
치 같다
남자의 두 눈썹 아래서 떨던 더러운 블랙홀 같다
블랙홀에 붙어 살랑거리던 개털 같다
더러운 재가 입술에 달라붙는다
* 김혜순 : 1955년 경북 울진 출생, 1979년 <문학과 지성> 등단,
시집 <죽은의 자서전> 등 다수
< 소 감 >
2019년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인터내셔날 부분 수상한 시집
<죽음의 자서전> 중 열여드레 부분이다
화자는 멀리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또는 물에 떠내려가는 검은
물체( 망사 장갑)를 바라보면서
한밤에 타오르는 한 송이 붉은 장미 같은 불길, 밤바다에 떠있
는 환한 배등, 눈부시게 강렬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하늘로 떠가는 불타는 상여등 죽음과 연관된 음숲한 이미지들도
떠올리고 있다 점점 강해져서
너를 내리칠 때 피 묻은 망치에 달라붙던 머리칼 등 극한 상황
까지로 번지는데 막막한 절망들이 온천지에 만년된듯 하다
여기서 필자는
긴장감 넘치는 한 살인 사건의 현장이 설핏 떠오르기도 했다
- 가까이 허리를 굽히고 다시 더 자세히 그녀를 살펴보니, 두개골이
부서져 옆으로 삐져나오기까지 한 것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그걸 건드려 보려다가 얼른 손을 거두었다.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확실했다. 그 사이에 피는 웅덩이 같이 괴어 있었다 -
러시아 작가 또스또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가
전당포 노파를 도끼로 살해한 후 확인 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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