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탕과 버찌/ 한보경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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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4-12-18 18:28본문
사탕과 버찌
한보경 산문집
저자한보경 출판 소울앤북 | 2024.12.15.페이지수232 | 사이즈 121*188mm판매가서적 13,500원
책소개
어떤 시간으로 돌아가 다시 살 수 있다면 그리운 기억의 언저리쯤이 아닐까. 이유 없이 서성이고 설레고 가슴 졸이게 하던 그리움이 저장 된 거기.
언니와 함께 노각무침에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벼 먹던 여름 저녁의 밥상,
드문드문 팥을 넣어 뜨겁게 찐 찐빵과 통째 베어 먹던 샛노란 참외 같은, 그리움이 길들인 맛의 기억들.
빌려 온 엄희자의 순정만화와,
가을날 문득 내다본 뒤뜰에 소복이 쌓인 노란 은행 잎사귀,
시루떡과 강정을 쌓아둔 다락방에 몰래 숨어들 때의 아슬하고 행복했던 포만감,
멜라니 사프카를 들으며 이별보다 더 슬픈 시간을 생각하던 작은 골방,
뜻도 모르고 따라 부르던 칸초네처럼 밝고 단순하고 솔직했던 하루하루들.
켜켜이 쌓인 나의 그리움들이다.
그리움으로 길들인 기억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끝낼 수 없는 시간이다.
한 다발의 그리움이 엮은 지난 시간들을 나는 기억하고 싶다.
한때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은 적이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한보경
에필로그
우리가 원하는 것은 끝일까 시작일까…… 225
책 속으로
기억이 하나의 얼굴을 갖기 위해서는 불편한 기억을 뜸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기억으로 그렇지 못한 기억들을 잘 싸매두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각각의 기억들이 서로 스며들어 반목하지 않고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설익거나 타서 눌어붙지 않게 잘 뜸 들이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런저런 기억들도 뜸 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서로 부딪치고 뭉개지고 스며들어 잘 어우러질 것이다. 어느 순간 좋고 나쁨의 경계는 사라질 것이다. 옳고 그름의 분별이 사라지면 주장하고 고집하던 모난 얼굴들은 비로소 부드럽고 편안한 얼굴을 하게 될 것이다.
(본문 「기억의 얼굴」 중에서)
해마다 피는 호야꽃에게 더는 근거 없는 기적과 행운을 기대하지 않는다. 꽃을 보는 기쁨 자체가 힘들고 팍팍한 시간을 견딜 수 있게 도와주는 향기로운 위로다. 피는 꽃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도 귀한 깨달음이다. 내가 진 무거운 짐과 근심을 꽃에게 떠넘기지 말 일이다. 꽃은 꽃으로 바라볼 때 가장 큰 기쁨이 되어줄 것이다.
호야꽃도 꽃이다. 꽃이니까 피고 진다. 천천히 피는 꽃이지만 질 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황망히 떠난다. 후둑후둑 낱낱이 해체되듯 떨어져 바닥에 흩어진 꽃잎은 꽃이었던 기억조차 지워버린 듯 허허롭다. 그 허허로움 속에 못 보고 지나쳐버린 세상이 보인다. 꽃이었던 시간조차 낱낱이 해체한 빈자리. 더 크고 공활한 시공 속에는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무상이 빛나고 있다.
(본문 「호야꽃이 피다」 중에서)
인공지능이 일상사처럼 회자되는 세상이다. 앞으로 더 큰 변화 속에 행복의 기준과 가치도 점점 달라질 것이다. 기대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더 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탕 속에는 불필요한 걱정이나 불안의 쓴맛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버지의 사탕이 그립고 달콤 쌉싸름했던 버찌 맛이 그리운 이유는 걱정과 불안이 끼어들 틈새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작고 소소한 것이 지닌 고전적 사랑의 가치가 오래 우리 곁에 머물기를 바란다.
거리마다 지천인 벚꽃이 진 자리마다 빨갛게 버찌가 열리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꽃의 짧은 마감이 마냥 아쉽지만 않을 것 같다.
어딘가 여전히 있을 것 같은 ‘위그든 씨의 사탕 가게’를 찾아 잘 말린 버찌 씨 하나를 조심스레 내밀고 알록달록한 꽃사탕을 사오고 싶다.
아버지의 사탕처럼, 작은 버찌 씨를 받아 든 위그든 씨처럼, 애틋한 사랑의 봄날이 또 올 수 있을까.
(본문 「사탕과 버찌」 중에서)
한보경 시인
한보경 시인
부산대학교 국문교육학과 및 동 대학원, 부산 작가상 수상
시집 『여기가 거기였을 때』와 『덤, 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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