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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섶에서 마주친 이야기/ 노준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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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회 작성일 24-12-19 19:57

본문

서평」 되돌아갈 수 없는 생의 변곡점(變曲點)에서



노준섭 시인의 네 번째 시집 길섶에서 마주친 이야기를 읽고



 


글 김부회 시인문학평론가수필가


들어가며


시집 한 권 내기도 벅찬 시간이다보통 한 권의 시집 속에 80여 편의 시가 들어간다고 가정해 보면 대략 300~400편 정도를 독자에게 혹은 내게 심연의 시간을 고민한 흔적을 고해성사하는 것과 같다시 한 편을 쓰는데 퇴고까지 열흘 정도 걸린다고 계량해 보면 4,000시간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하면 166일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 된다이것도 아주 보수적인 관점에서 계산해 본 것이며퇴고 및 시의 주제구성문제구도성찰의 시간까지 고려하면 대략 시집 4권을 내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로지 시만 1년을 꼬박 책상에 앉아 써야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마치 직장인이 월급을 받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을 모아야 1억이 될까 말까 한 현대사회과연 시집 4권을 저술하고 판매하여 시인이 1억을 벌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전혀 아닐 것이다도리어 1억 이상의 계산상 손실 (심력시간생각고민 등)이 발생하였을 것이다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린 계속 시를 쓴다.


노준섭 시인의 2, 3번째 시집의 서평에서 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시인 노준섭의 시는 눈으로 읽는 시가 아니다가슴으로 읽는 시편이라고 하면 적절한 해석이 될 듯하다우주와 철학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생활과 삶이라는 단순한 일상에 대입하여 사람이 살아갈 도리와 정답에 대한 고민을 같이하게 만드는 것의 노준섭 시인의 특징이다.”라는 말을 했다시쳇말로 가볍게 이야기하면 돈도 되지 않는 시라는 장르를 붙들고 마치 수행하는 선승의 화두처럼 끊임없이 생각하고 성찰하고 되돌아보며 시인이 살아온 길에 대한 반성과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무의식에 잠재된 삶의 저변에 대해 어느 날 불쑥 막대사탕 내밀 듯 독자에게 내미는 스타일의 시인이라고 하면 맞을 듯하다.


시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문학 장르다소설과 달리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기반한 진솔한 자기 언어의 독백이며 고백이다한 갑자 이상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번뇌와 얼마나 많은 억울함과 못다 한 이야기가 우리 속에 존재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그 모든 상황과 매개변수에 대하여 그저 지나치고 말면 될 것을 다시 고민하고 생각하고 정진하는 모습이야말로 일종의 구도자와 같은 모습이다그림자는 응달에 들어가면 잠시 안 보이지만 양달로 나오면 늘 그렇듯이 내 곁에 존재하는 나의 또 다른 실루엣이다시는 시인에게 있어 그림자와 같은 역할이다잠시 안 보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늘 사변의 언저리에 나와 함께 존재하는 데미안과 씽클레르와 같은 무의식과 유의식의 융합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유명한 철학가의 말이 생각난다. “나는 생각한다고로 나는 존재한다. ”Descartes“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말이다이 문장은 그의 철학서 (철학의 기초)(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에 등장하며 그의 의심 주의 철학의 중요 구절 중의 하나이다이 말에 대해 좀 더 부연 설명하기 위해 영어로 바꿔쓰면 'I think, therefore I am'이라는 말이 된다정리하면 인간의 존재 이유와 특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의 말이 된다.


살다 보면 많은 이유에서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들이 부지기수다사실 그 모든 것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되짚어 본다는 것 역시 생산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하지만 사람이라면생각함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그 생각과 존재에 대해 늘 의심하고 경계하고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사람은 현재를 사는 것과 과거를 포용하는 것과 미래를 품고 있는 다변화된 시간적공간적 요소를 동시에 한 몸에 지닌 유일한 포유동물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학계의 의견이다지금 보이는 저 별빛은 수백 년 혹은 수천 년수만 년 전의 별빛이 지금 내 눈에 도달해 보이는 것이라면 그 별빛은 아직 살아있는지혹은 여전히 그 별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모른다태초의 빅뱅 이후에 우주는 팽창을 거듭하고 있고 지구는 우주의 어느 점으로 계속 돌진하는 중이다느낄 수 없고 만질 수 없기에 판단하지 못할 뿐과거현재미래가 혼용된 공간 속에서 우리는 사는 것이다그 모든 우주의 섭리와 운행을 모두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단순한 동물인 것이다하지만 생각은 이 모든 동물의 단계를 뛰어넘는 동기부여를 한다섭리는 철학 가운데 존재하는 것이다노준섭 시인의 작품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닌가슴으로 읽는 시라고 말했다중요한 말이다눈으로 쓱 읽고 지나가면 남는 것은 잔상일 뿐이다가슴으로 읽으면 남는 것은 울림이다내 안의 어느 곳에 자리 잡은 서정혹은 반성과 같은 것들에게 경종을 주는 새벽예불의 종소리와 같은 너울성 소리의 연속인 것이 노준섭 시인의 특징이며 차별화된 문장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네 번째 시집 길섶에서 마주친 이야기를 읽고 다시 한번 알게 된다현대 사회는 독자와 시의 간격이 점점 벌어져 있다시를 쓰는 사람은 많아도 시를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 기이한 현상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시각화감각화에 익숙해진 현대사회라는 진단도 가능한 병명이 될 수 있다바쁜 시간에 시 한 편 읽고 생각하는 것보다 핸드폰의 뉴스와 유튜브의 해설 등을 귀로 듣는 것이 시간도 절약되고 더 유익할 수 있다하지만 시는 뉴스나 해설이 아니다정치적인 반론과 위증이 아니다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고 나스닥이 끝 모를 곳까지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시 한 편이 고등어 반찬과 같이 저녁 한 끼를 충족해 주는 것도 아닐 것이며 시 한 편이 달콤한 귀엣말을 속삭여 주는 것도 아니다하지만 모든 세상의 이치와 섭리를 일종의 계량화된 수치로 이해타산의 주판을 굴리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마련이다. ‘서정이다세상을 살면서 인간답게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가장 인간답게에 가까운 말은 인간적이라는 말이다비슷하지만 개념이 전혀 다른 말이다때론 일부러 손해 보거나 때론 일부러 져주는 것이나 때론 내가 가장 낮아지는 것 등이 모든 인간답게에 해당하는 말일지도 모른다이런 행위들에 수반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오래전부터 함께 해 온 서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각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경쟁사회의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새벽부터 뛰는 우리에게 서정이 없다면마치 사계절에 가을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뜨거운 여름과 혹독한 겨울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단풍을 만나고어느 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찾을 것인가태양만 피해 다닐 것인가아니면 태양만 쫓아다닐 것인가시는 사람에게 그런 존재다비록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시 한 편의 무게에 나를 맡기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


돈도 안 되는 시 작품 중에 필자가 선호하는 작품이 하나 있다정호승 시인의 이별 노래라는 작품이다가수 이동원이 개사하여 노래한 유명한 곡이다잠시 인용해 본다.


이별 노래정호승 시이동원 곡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 속에서

사람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내 그대 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이별 노래 – 정호승 전문인용


그저 한 번 쓱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하지만 다시 노래를 생각하며 가슴으로 읽으면 전혀 새로운 작품이 된다. /그대 떠나는 곳내 먼저 떠나가서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노을이 되리니/라는 말을 그저 그런가 보다 하면 아무것도 아니다하지만 작품에서 말하는 그대의 자리에 아버지어머니동생가족친구 등등을 놓고 읽으면 큰 그림의 사랑에 대한 해석과 이별에 대한 애환이 느껴진다문학적 가치는 차치하고 본문만을 본다면 별다른 수사나 기술적 문장도 없다물 흐르듯 자신의 감정을 담백하게 적어나간다과연 우리가 이 작품을 돈도 안 되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지어느 날 불쑥 내 감정의 한끝을 건드려 나를 울먹이게 한다면 돈으로 측량할 수 없는 화두가 된다노준섭 시인의 작품이 대개 그렇다는 점을 밝히고 싶어 긴 문장을 인용해 가며 어설픈 시론을 펼친 이유라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노준섭 시인의 2, 3번째 시집 속 필자의 서평 소제목은 소회 所懷단상 斷想 그리고 詩的 형상의 미학 美學이다다시 생각해 본다이 세 단어 속에 삶이 모두 들어가 있다또한 그 삶에 대한 표현의 방법도 형상화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들어가 있다.


필자가 늘 강조하는 것은 우리는 시인의 프로필이나 문학상을 수상한 것이나어느 대학 어느 박사를 취득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다시는 나와 내 주변의 보통 사람의 이야기평범한 사람의 이야기평범해진 사람의 이야기와 평범해질 사람의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이다시는 죽은 생명에 새로운 생명을 입히는 것이다투박한 질감의 캔버스에 지금 눈에 보이는 풍경과 풍경 너머에 존재하는 풍경의 생각을 덧입히는 것이다노준섭 시인의 시를 읽으며 과연 시인이 길섶에서 마주친 이야기들이 어떤무슨이야기들인지 되새김질해 보자한 번쯤 시인의 혜안에 나를 맡겨보는 것이다이 가을의 깊은 무저갱에서 한 줄기 빛을 내게로 끌어당기는 일을 해 보는 것이다그것이 시가 대중에게 필요한 이유이며 대중이 시를 사랑하는 이유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기 전에 작가의 말을 듣고 싶다몇 부분 인용해 본다.


(작가의 말)


시를 쓴다는 이유로 계절에 공감하는 접점이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더한 삶을 산다 여겼는데 이 즈음은 그 계절조차 마주할 여유를 놓고 사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사는 모든 순간에 시와 함께하는 삶을 사는 것이 시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의 숙명이고 시집을 낸다는 것은 그 흔적을 기록하는 작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그리고 또한 든든한 백그라운드 동생들 그리고 내 소중한 자산인 아이들과 조카들그 모두의 소중함을 다시 새기며 나의 글 한 줄에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들기를 소망합니다.


작가의 말 일부 인용


흔적을 기록한다는 말을 하였다그 모두의 소중함을 다시 새기며 그들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들기를 소망한다고 하였다노준섭 시인이 시는 쓰는 이유다지나온 삶의 변곡점에서 시인이 시인답게 펼치는 이야기를 몇 작품을 통해 만나 보고 싶다닮고 싶다그 이상의 이유가 뭐가 존재할까?



들여다보기


실낙원 (失樂園)



이 사과 먹어봐요

여인의 붉은 입술 나비 같다

붉은 나비 본적 없는데


숨결 뜨겁다

여인의 거짓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내 거짓 아니라고

이유 찾기 시작했다


낙원 그렇게 멀어졌다

여인 입술 붉은 까닭으로


붉은 입술 토해낸 숨결

거부할 힘이나 능력 애당초 주지 않았다

소돔의 성에서 일어난 행위

결과가 예측되었다손 멈추었을까

지옥불 등에 지고도 붉은 입술의 유혹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

여인 내뿜는 숨결 유황불보다 거센 까닭


또한 그로하여 인류 존재하는


다만 존재하는 것 모두 나름의 이유와 가치 지니듯

그것이 주어진 까닭

존재의 또 다른 이유


이 사과 먹어봐요

붉은 입술 불 머금은 나비 같다

거짓 말하는 입술에 기꺼이 속은 나는

낙원을 나선다


모든 것을 던지고 낙원에서 쫓겨나

비로소 사람이 된다


실낙원 (失樂園)」 전문 인용


실낙원이라는 말은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이 지은 서사시의 제목이다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과 하나님에 대한 반항을 주제로 삼고 있는 작품이다주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인간에게 합당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작품을 분석하기 위해 실낙원에 대한 장황한 소개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지만노준섭 시인의 실낙원은 존 밀턴의 실낙원과 매우 흡사한 주제 의식을 갖고 있기에 부연 설명을 했다작품에서 시인은 여인 입술 붉은 까닭에 낙원이 멀어졌다고 한다뱀의 달콤한 유혹보다여인의 붉은 입술에 더 좃점을 맞추고 서술했다작품은 지속적으로 여인에 대한 책임 혹은 타고난 마성적인 매력으로 인하여 모든 실낙원이 시작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여인 내 뿜는 숨결 유황불 보다 거센 까닭역시 그런 글의 맥락에서 이루어진다그러면서도 아니러니하게도 그것 역시 일종의 섭리하나님의 합당한 섭리하는 시인만의 느낌으로 존 밀턴의 주제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존재의 또 다른 이유/라면서도 기꺼이 그 거짓말에 속은 나는 낙원을 나선다며 자기변명을 하고 있다중요한 것은 기꺼이 속은 나라는 존재다나라는 존재는 이데아적인 물상의 형이상학이 아닌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을 꿈꾸는 보통의 사람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정호승의 작품 이별 노래에서처럼 /그대의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와 행간을 맞춘 형태가 된다낙원이란 것은 모두의 낙원이지만 내게는 그 낙원이 낙원이 아닐 수도 있다그건 반항이 아니라 삶의 방점이다기준치의 설정과 변화와 변화에 대처하는 한 인간의 저렴한 고백일 수 있다는 점이 시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공통분모라는 말보다 교집합이라는 말을 선호한다일부는 겹칠 수 있지만 결국 나는 라는 존재의식에서 결론 맺어지는 것이 인생이다당신의 정답이 내게 오답이 될 수 있듯실낙원은 더 이상의 이데아로서의 존재감을 상실하고여인의 여인의 존재감을 상실하고 나는 나로 되돌아간다는 발상은 시인다운 발상이다최소한 인간적이라는 생각을 들기에 가장 먼저 이 작품으로 시인의 기질을 판단해 본다.



너의 주문 (呪文)



휘파람 불어주세요

말간 시선 매단 앙징맞은 입술 나비 같다


먼 기억 모퉁이 돌다 놓아 버렸는지

계절 까마득한데

물방울처럼 터지던 웃음

너의 기억 어찌 그리 밝은가


무에 그리 고파서 청춘 날마다 갈증이었다

푸름은 푸름 그를 위하여 날마다 신열로 타올라야 했기로

밤마다 별빛 바다 헤집어야 했고

그로하여 갈피 없는 매 순간에게 나름 의미 부여하기도 했다

찬란함 속에서의 미로 그런 까닭으로 더욱 난만했고

길 잃은 영혼의 방황 모든 것이 간난 했다


휘파람 불어주세요

시선 깊이 공허 감춰 두고 파리한 입술

장다리꽃 찾아 나는 배추흰나비 같이


봄은 덤으로 오는 계절이 아니다

지독한 성장통 겪고서야 비로소 책임 부여되듯이

불현듯 나타난 미소 아득한 이유


바람 한 줄기 마른 가지에 머문다 하여

비로소 봄 아닐지라도

시새운 칼 끝에서 두렵지 않은 빌미 되리

하여

나풀나풀 가녀린 주문 하나

휘파람 불어주세요


너는 봄

그로하여 환하게 일어서는


너의 주문 (呪文)」 전문 인용


주문이라는 말은 주술적 표현이다주술은 민간에서 행하는 일정의 토템이즘 적 신앙에서 비롯된 의식이며 제례이며 축원이라는 말과 동의어일지도 모른다주문을 왼다는 것은 도달하지 못한 어떤 행위 혹은 결과를 같은 말을 반복하며 도달하게 해 달라는 기원과 같은 것이다시인은 본문에서 휘파람을 주문이라는 말과 병치하여 사용한다휘파람가볍게 입술을 모아 부는 것도구가 필요 없는 몸으로 내는 악기 소리 중 가장 경쾌하며 전달력이 높은 주문이다대상이 없이 휘파람을 불어달라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대상이라는 것은 대상이면서도 대상이 아닌 비형상된 목적물이다대상은 청춘이며대상은 미로이며대상은 비로소 봄이 아닌 어떤 것이며그로인해 나풀나풀 가녀린 주문 하나가 나를 봄으로 이끈다휘파람 하나로 너는 봄이 되고 봄이 된 너로 인하여 환하게 일어서는 나휘파람은 우주의 운행이 만들어내는 섭리 가운데 가장 높은 재촉음이며 삶을 일으키게 만드는 환상력을 일깨우는 소명의식과 같은 주술의 한 단계가 된다비로소 봄은 아닐지라도 봄은 그렇게 나를 재차 깨우는 주문을 건다휘파람을 불어주세요불현 듯 나는 내게서 일어나 봄의 끝자락을 밟고 봄의 시작이라고 나를 재촉한다여인인 듯 여인이 아닌봄인 듯 봄이 아닌너의 주문은 마성에 깃들어 세상 만물을 외럽거나 서럽지 않게 만든다작품이 하는 말이다.



부고를 듣다



귀동 아저씨 부고 가족 톡에 올랐다

여든일곱 아버지 가슴 훑었을 바람 활자 틈 헤집었다

이제 아버지 고물차에 함께 점심 마실 갈 누구도 없이

낫처럼 굽은 할매들만 남은 동리

뒷 도랑 갈라 터진 입술 아려 노래 멈췄다

땡볕 기운 자리에 앉아 재탕 우린 인삼주 유리잔에 따르고

아버지 시선 텅 빈 허공 헤집었다

탄식 같기도 한숨 같기도 한

꼬리 긴 숨소리 잘린 앵두나무 밑동 맴돌다 스러지고

독한 술에 설 우려진 삼 냄새에 취한 아버지 두 눈으로 익은 해 뛰어들었다

오래오래 사세요

거스름돈 쥐어주듯 던져진 안부 인사 한 마디

그리움 고파 앵두나무 베어낸 늙은 가슴으로

외로움 부채질하는 그 한 마디

고랑 깊은 골로 한 방울 서글픔으로 흘렀다


부고를 듣다전문 인용


나이 들수록 부고장이 체납 고지서처럼 쌓인다갈 곳과 인사만 할 곳과 모른척할 곳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모두 다 가야 할 곳이다아버지와 친했던 아버지 아는 분의 죽음과 부고장인생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달랑 부고장 하나뿐이다아버지는 이제 고물차를 타고 같이 점심 먹을 사람이 없다올해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 이제 친구들도 만나고 그러세요!’ 대답이 한마디다. “다 죽었어.” 누가 있기에 만나고 술 마시고 한탄하고 정부를 욕하고 칭찬하고 너스레를 할 것인가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거스름돈 쥐어주듯 던져진 안부 인사.


오래오래 사세요

거스름돈 쥐어주듯 던져진 안부 인사 한 마디

그리움 고파 앵두나무 베어낸 늙은 가슴으로

외로움 부채질하는 그 한마디

고랑 깊은 골로 한 방울 서글픔으로 흘렀다


부고를 듣다」 일부 인용


외로움을 부채질하는 그 한마디 인사인 줄 알면서도 던질 수밖에 없는 인사삶이란 그런 것이다거스름돈 쥐어주듯 인사를 드리고 나눈다. ‘밥 먹었니?’ ‘언제 밥 한 번 같이 해’ ‘다들 잘 지내지?’ 그래본들 결국 외로움만 부채질하는 인사에 불과하다자식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하다어쩌다 거는 전화 한 번의 통화 시간이 1분이 되려나더 할 말도나눌 말도들을 말도 없다다만아들은 잘살고 있소아버지는 잘살고 있다그 말에 살을 붙이고 가지를 더한 것이 1분이다나도 아버지인데아버지가 될 것인데나도 1분짜리 통화하는 아버지인데알면서도 불쑥 들려온 부고장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렁그렁하다내 모습이기에 아프다갈수록 줄어드는 농촌 인구문제사회 문제휴머니즘을 생각할 수 없는 이 세태가 과연 바른 것인지 내가 내게 반문하고 싶다오래오래 사세요라는 말이 과연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 알 수 없다시인의 가정 이입은 이렇게 우연히 만들어지는 소나기와 같은 것인가 보다부고장 하나에 1년이 더 당겨진다고 한다살 날 1년이비슷한 맥락에서 또 다른 작품 (인연의 무게)에서 시인은 말한다.


인연의 무게


한 겹의 인연 고리로 엮이고

고리는 사슬 되어 치렁거렸다

뉘라서 의도하였으리


인생이란 본디 푸른 달빛처럼 외롭다 하여도

배면으로 얽힌 인연으로 하여

끝내 홀로이지 못한 여정


인연의 무게」 부분 인용


끝내 홀로이지 못한 여정이라는 말을 한다홀로지만 홀로이지 못할 여정아버지의 여정이 그렇고 내 여정이 그렇고 내 자식의 여정이 그렇다결코 홀로이지 못할 여정을 살면서 우리는 인정하지 못하고 우리라는 착시를 갖고 살게 마련이다두 작품의 근간에서 귀결 되어지는 것은 아프다라는 말이다인간이기에사람이기에그리고 그것이 삶이라는 싫은 방정식이기에 더욱 그렇다.


둥지 연대기


겨울 은행나무

노란 사연들로 가을 떠나보낸 가지 위

헐벗은 둥지 하나

이별인사 없이 허물어진 동네 초가처럼 앙상하다

빈 가지로는 바람도 오래 머물지 않아서

스쳐간 자리마다 관절 시린 아우성만 진저리로 남고

딱히 기대할 기별 따위

한적함은 적요 속에서 목마름으로 뒤척이지만

일말의 근심도 없다


마른 가지 하나

우듬지 곁으로 비켜놓아 터 잡을 때

가지마다 번져가던 연녹의 새움

어느 마당에는 차일 쳐지고


파란의 시간 위로 녹음 더욱 짙어

어느 사립문 위로 금줄 걸리고

아기새 깃털 여물어짐으로 날갯짓 더욱 고됐다


안다는 것은

결정을 담보하는 것

비극의 시나리오 받아 든 배우처럼

묵묵히 준비하는 시간

그럼에도 천 번의 연습으로 한 번의 실행은 감당하기 버거운 것


고샅 뛰노는 아이들의 왁자함 따라

튼실해지는 날개

잎새 푸르다 지쳐 바래지는 시간마다 사연 담고

언제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단 하루 숨 가쁘게 퍼덕였을 뿐

딱히 무슨 연유로 이별 준비했을까


하나 가르쳐주지 않아도

애써 외면했을 뿐

잠시 머무를 슬픔 뒤로

둥지는 비어지리라는 사실


고샅으로

술래 된 바람만 헤집다 가고

잎 진 나무 끄트머리

헐거운 둥지로 달빛 새어 나겠지


둥지 연대기」 전문 인용


둥지는 내가 자라고 난 곳이며어느 정도 살아갈 준비를 하는 곳이다하지만 둥지는 포근한 곳이지만 언젠가 떠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달도 차면 기우는 법더 이상 둥지가 둥지가 아닌 정류장이 된다면 둥지 밖의 나는 둥지 속의 먼 이야기들에서도 멀어지게 된다그러다 어느 날 불쑥어떤 시절의 둥지 속 이야기들을 꺼내 읽다 보면 눈시울이 촉촉해진다그때는 몰랐던 이야기들이생각들이배려와 나눔이이제야 그것을 생각할 나이가 되니 유시화 시인의 책 제목중 일부처럼 지금 알았더라면 이라는 후회와 회상이 나를 멈추게 한다시인의 나뭇가지 위에 헐벗은 둥지 하나를 보면 유년의 자신을 생각해 본다.


헐벗은 둥지 하나

이별인사 없이 허물어진 동네 초가처럼 앙상하다

빈 가지로는 바람도 오래 머물지 않아서

스쳐간 자리마다 관절 시린 아우성만 진저리로 남고

딱히 기대할 기별 따위

한적함은 적요 속에서 목마름으로 뒤척이지만


둥지 연대기」 일부 인용


둥지 밖의 지금둥지를 보니 그렇다바람도 오래 머물지 않는다딱히 기대할 이별 따위라는 말을 한다따위라는 말은 부정적이다아니 어쩌면 체념에 가까운 언어인지도 모른다따위라는 말은 보상적이다자기 보상적인 단어에서 위안을 얻는 것은 사람의 속성이다그 회상의 언저리에서 시인은 말한다.


안다는 것은

결정을 담보하는 것

비극의 시나리오 받아 든 배우처럼

묵묵히 준비하는 시간

그럼에도 천 번의 연습으로 한 번의 실행은 감당하기 버거운 것


둥지 연대기」 일부 인용


자기 위안을 하면서 한마디 덧붙인다안다는 것은 결정을 담보하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둥지 밖이 어떻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결정을 담보해야 실행할 수밖에 없는 행위어쩌면 모든 인생이 그 범주 속에 들어있는 듯하다결정을 담보하기까지 숱한 번민의 시간이 지나갔을 것이며둥지 밖의 소외감과 경쟁에 지쳐 어느 날 빈 둥지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보이는 것은 바람도 오래 머물지 못하는 나뭇 가지 위의 허름한 둥지 한 채화자 자신도 알 수 없는 이별의 동기와 둥지는 이내 비어질 것 이라는 사실 사이에서 추레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시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얼 알 수 있을까시제가 둥지가 아닌둥지 연대기라는 것에 잠시 눈을 돌려본다시간적 관계를 결정하고 사건들을 일어난 순서대로 배열하는데 쓰이는 말이다일종의 전승이며 일종의 가계도며 일종의 내력이며 일종의 관습이다따를 수밖에 없는 삶의 관습들그것에서부터 시인의 독백은 낮은음으로 노랠 부른다결국 산다는 것은 알면서도 둥지를 떠나는 일이라는 체화한 진리를 우리에게 고백하고 그 고백이 울림 준다시가 그런 것이다.


서도역에서


기다림 놓아버린 빈 역사 기와 위로

석양 부서져 날렸다

이별 배우지 못한 참새

동백 울타리 넘나들며 짓이 나고

역마당 철길 넝쿨장미 시선에 목마르다

오래된 벚나무 호위병처럼 늘어서서

녹슨 기찻길 흔적 더듬다 지치는데

어미품 떠나려는 딱따구리

호기심 그득한 시선 번잡하다

온종일 하늘길 걸어온 해

서산에 걸려 발간 얼굴로 아쉬운 인사 하는데

전년의 기억 더듬다 그리움에 빠져버린 객

철길 더듬어

갈 수 없는 나라

아이 날리는 연 꼬리에 매달려

행여 그리하면 닿을 수 있을지

부질없는 상념에 목마르다

침목 하나마다 그립다 적어

행여 기적 울리는 어느 날이어든

꼬리 긴 기적에 그 마음 날려나 봤으면

모든 것이 아쉬운 시각

아쉬움조차 내어놓기 더 아쉬워서

입안에 쌉싸름한 버찌 내음 가두고 길로 나섰다


서도역에서」 전문 인용


서도역은 남원에 있는 역이름이다. 1932년도에 준공하여 2002년에 2대 역사로 다시 리뉴얼한 역이기도 하다일설에 의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이라는 별칭이 붙은 역이기도 하다하지만 아쉽게도 인구의 소멸과 여러 이유로 인하여 2008년 7월 1일부로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폐역이 되었다는 말이다지금은 남원시가 인수하여 공원으로 조성된 제법 긴 역사와 풍광을 가진 아름다운 역이다시인의 서도역의 어느 날을 회상하고 있다.


철길 더듬어

갈 수 없는 나라

아이 날리는 연 꼬리에 매달려

행여 그리하면 닿을 수 있을지

부질없는 상념에 목마르다


서도역에서」 부분 인용


갈 수 없는 나라닿을 수 없는 인연쫓겨날 수밖에 없는 에덴의 아담둥지의 연대기 모두가 한 궤를 타고 있다시인이 길섶에서 만난 이야기들은 어린 날의 이야기들이다회상의 이야기이며품에 안고 뒹굴고 싶은 이야기들이며 세상의 변화에 초연한 이야기 들이며그러한 모든 회상이 부질없는 상념에 목마른 자신을 샅샅이 관찰하는 중이다귀결점은 하나다갈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내가 태어났지만내가 자랐지만내가 보았지만나를 품어주었지만 이제는 갈 수 없는 나라가 된 곳아련한 그리움을 시로 노래하는 것이다.


행여 기적 울리는 어느 날이어든

꼬리 긴 기적에 그 마음 날려나 봤으면

모든 것이 아쉬운 시각

아쉬움조차 내어놓기 더 아쉬워서

입안에 쌉싸름한 버찌 내음 가두고 길로 나섰다


서도역에서」 부분 인용


모든 것이 아쉬운 시각이라는 말이 아릿하다중년을 넘어 환갑을 지난 나이에 되돌아보니 온갖 후회와 상념이 나를 붙든다더 아쉬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는데헤아려보니 아쉬운 것 투성이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지나간 모든 것에 대하여 갈 수 없는 나라의 입국 허가서를 위해서 아등바등 해도 결국 나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궁극의 나는 궁극의 네게 다가가도 싶은 것이다아무리 현대 시문학이 발전하고 진화를 거듭해도 나는 여전히 정지용의 (향수)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를 좋아한다들판에 일하는 발 벗은 아내와 3류 여류 잡지가 지금은 없기 때문이 아니다내가 나고 자란 곳이 바로 그 지점이기 때문이다.


맺으며


몇 편의 작품으로 시인의 시 세계를 알 수 없다단언컨대 시인을 알기 위해서는 그가 펼친 모든 작품을 낱낱이 읽는 것이다시인의 정신세계와 시인이 시각화한 물상의 제 법칙에 맞는 옷이 내게도 맞는 옷이 되기 위해 독자에게는 읽어 줄 책무가 있는 것이다시가 독자와 멀어진 것은 시인과 독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읽을만한 시를 써야 하고 그걸 읽어 주는 눈이 필요하다. ‘얼죽아라는 말로 포장하지 말자얼죽아 두 잔 값이면 시집이 한 권이다잠시 시원한 것과 오랫동안 영혼이 맑아지는 것을 선택하라면 과연 우리의 선택지는 어디일까아주 가끔은 속는 셈 치고 시집 한 권 읽어보자. 11월이다늦가을의 말미에서 노준섭 시인의 시집 길섶에서 마주친 이야기를 귀 솔깃하게 듣고 지친 내 영혼을 잠시 정갈하게 만들어보자그것이 옳다마지막으로 노준섭 시인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며 맺는다구태한 말이지만 널리 사랑받는 귀한 시집이 되길 원하며 친구 노준섭 시인의 장도에 축하를 보낸다.


역적의 세상


그거 알아?

포식자 이빨 절대 강하지 않다는 거


음험한 눈초리 검불에 숨어 나약한 목덜미 노리지

그리고는 고양이 걸음을 걸어

은밀하게 비겁하게

공동의 이익 향한 이합집산은 녹슨 가면 가리기 위한 기름칠이야

대개는 슬픈 눈망울 가진

물기 많은 시선 언제나 손쉬운 목표가 되지

누런 이 가녀린 목 헤집을 때 슬픈 눈망울에 담긴 하늘 붉은 카펫 깔아


네가 차벽 타오를 때

너 떨궈낸 물줄기 노인의 복부 뚫고

민주의 폐부 헤집었지

나는 그저 타는 목마름으로 목쉰 주먹만 휘젓다가

무용담에 편승했을 뿐


타락한 영혼 주술 읊어

어느 바다로는 꽃 시들어 별 되는 제단 차려져

미친 여인 위한 광란의 의식 진행되었어

벌건 백주에


위로하지 못한

가난한 영혼

촛불로 켜지고

너는 역적이란 이름의 목수로

너의 허리춤에 걸린 줄자 세상에 대었지


포식자의 광기

피식자의 판단을 흐려

집단 환각을 부르지


가녀린 목덜미

무방비로 내어 놓고

용비어천가로 인한 결과

무딘 이빨에 찢기는 아픔


너의 대패가

너의 망치가

너의 못과 끌

너의 줄자로 그어진 금을 따라

다듬어지는 세상은

꽃으로 져 별로 핀 아이들의 세상에서나

가능한 걸까


멋쩍은 미소 뒤에 감춘 너의 열망이

겨우

겨우

허파에 붙은 혹으로 지는 거야

무딘 이빨도 아니고?


나는 그만 이석증이 도져

빙빙 도는 너의 웃음이 어지러워

역적 같은 너의 삶에 탄식만 보탰어


촛불 하나 빈자리는 바람 드셀까?


네가 바라던 세상은 오지 않으려나보다.

아우야~!!!

나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네가 그립다 삼만아!!!


역적의 세상」 전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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