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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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154회 작성일 24-10-21 11:34본문
서쪽 하늘을 다림질하던 태양이
길게 늘여놓았던 세상의 모든 그림자를 수거해야 할 시간
나를 앞섰던 그림자가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시간의 한쪽 모서리를
예사롭지 않게 토막 낸 둔탁한 소리가
노을이 가득 담긴 유리창에서 튕겨 나왔기 때문이다
오늘은 추락하기 좋은 날이었을까
내 그림자가 단 한번 뒤를 돌아보았을 때
유리창 속 노을의 부드러운 속임수에 하나의 작은 생명이 날개를 접고
제 일대기를 스스로 지울 뻔했다
내가 들었던 유리창의 둔탁한 소리는
제 그림자를 물고 노을 속으로 파고든 새가
무덤을 부르는 소리였다
자결하듯 추락하는 날개가 아름답게 빛났다
과녁을 맞춘 소리의 통각, 나의 것이 아니지만 내 몸에 독처럼 번졌다
어느 순간 바닥에 누운 새의 침묵에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새가 다시 빛을 물고 하늘 냄새를 맡았다
하나의 생명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 우주는 얼마나 뒤척이며 떨었나
이 세상에 죽기 좋은 날은 없다.
댓글목록
힐링님의 댓글
힐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의 제목으로 보면 오싹했는데
시의 내용 깊은 곳으로 파고들면 생명의 예찬!
이 역동성에 다시금 놀라게 합니다.
서사적인 촘촘한 내부를 짜는 언어의 마력이란
이렇게 감동으로 오는 것을 목격합니다.
모든 사물과 생을 투명하게 직시한다는 반증입니다.
시의 깊이를 체득하지않고선 쉽게 건져 올릴 수 없는 것을
봅니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새들의 죽음에서
재탄생하는 문명의 위기를 역으로 해석하는
이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이것은 시인님의 살아 숨쉬는 영혼의 울임이지요.
하나의 생명을 끝까지 직시하는 이 치열함이란
시가 쌓고자 하는 눈부시는 탑이 아닐까요.
좋은 밤이 되세요.
늦은 밤까지 밖에 외출했다가 돌아와
시인님의 시를 접하고 긴 목마름을 풀었습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희 집은 복층으로 되어있는 단독 주택인데
큰 유리창이 많은 구조입니다. 드물게 쿵 하고 창문에 닿는 소리가 들려서 보면
데크에 참새나 곤줄박이가 기절해 있습니다.
잠시 기절해 있다가 날아가면 기분이 좋은데 깨어나지 못하는 참새를 보면 너무 미안해 집니다.
늘 좋은 말씀으로 시평을 남겨주시는 시인님
오늘도 좋은 하루 빚으십시오. 감사합니다.
안산님의 댓글
안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제 글제를 보고 놀랐습니다만 반전이 있어 다행입니다.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만 정신을 차리는 새도 있다니
다행입니다. 투명 유리창에 사람도 가끔 부딪혀 다치는 경우도 있지요.
취미로 사진을 찍는 저도 유리창에 접근하다가 렌즈를 부수는 일도 있었습니다.
" 새가 다시 빛을 물고 하늘 냄새를 맡았다 "
그렇습니다. " 하나의 생명이 세상밖으로 나오기까지 우주는 얼마나 뒤척이며 떨었나 "
깊은 시심을 느끼며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갑습니다 안산 시인님.
부족한 저의 글에서 한 수 배우시다니요.
저야 말로 시인님께서 끌어 올리는 사유의 확장을 부러운 마음으로 배웁니다.
저의 글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