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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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차림으로 시내에서 돌아오는 밤
키다리 포플러가 늘어선 강변길 지날 때면
파도와 노는 윤슬에 눈이 부셨다
하필 공동묘지를 지나야 닿는 하숙집
젖무덤 같은 유택幽宅들 사이로 난 조붓한 귀로
행여 산책 나온 영혼들에게 덜미를 잡힐까
등골에 서리가 내리는 날도 더러 있었다
공동묘지에는 영혼만 사는 게 아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밤이면 동화속 유령이 나타나
부엉이 소리를 내며 겁을 주곤 했는데
그럴 땐 유택에 사는 어른들이 나를 지켜주리라 믿었다
세월에 떠밀려 자리 잡은 도시의 어느 산동네
가파른 계단을 지나 등성이에 오르면
납작하게 어깨를 맞댄 보금자리들이 보였고
징검다리 가로등보다 더 밝은 달이
온 동네를 비단결처럼 감싸주었다
내가 너를 따르듯 가는 곳마다 따르는 달
오랜 세월 그러다 보니 머릿결도 그 빛을 닮아
백색인지 은색인지 이름도 모를 색깔로
내 모든 색이 그런 색깔로 닮아가는 것 같았다
그 옛날 공동묘지 조붓한 길로 다니던 소년
그 시절 그 달빛 속으로 마술처럼 사라졌으면
가능하면 봄을 닮은 밤, 그 향기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달빛을 바른 어릴 적 기억이 아련히 떠 오릅니다.
당시 국민학교 시절 학교에서 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
상엿집 옆을 지나가야 하는데
상엿집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망치듯 뛰어갔지요.
시인님의 시를 통하여 잠시 유년의 추억에 젖어 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안산 시인님.
안산님의 댓글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나름 환타지아로 꾸며보았습니다.
하숙집이 하필 산 아래에 있어서 시내에 나갔다가 올때는 공동묘지를 거쳐야
했기에 그곳을 지날 때는 등골이 오싹하곤 했지요. 특히 달이 밝은 밤에는
글에 적은 것처럼 여려가지 생각이 나곤 하였습니다.
두서 없이 적은 글에 격려의 말씀 주신 수퍼스톰 시인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