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소리의 색깔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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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6건 조회 129회 작성일 24-10-31 10:06본문
1.
늘 같은 자리에서 수직의 시간을 돌리던
동네 이발소의 삼색 싸인볼이 어느 날부턴가 회전을 멈췄다
지난 수년 간 그곳에서
이발사와 주고받았던 시간의 기슭을 더듬으며
싸인볼에서 빛의 언어가 쏟아지길 기대했으나
나의 희망은 적막한 벼랑의 틈새를 메우다가 사라지는 안개가 되었다
그의 손에서 가위소리가 자랄 수 있을지 없을지는 그만의 것이어서
가끔 멀리서 불 꺼진 싸인볼만 훔쳐보고 돌아왔다
한 줄로 요약될 수 없는 말의 색깔,
그와 나눴던 수많은 대화의 낱장들이 마음속 제방에 부딪치는
강물소리 같았다
2.
그는 낮달처럼 흔적을 지우고 돌아오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이기적으로 더 빨리 자랐다
정수리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의 시간에 저항도 반항도 할 수 없는 나는
곧은 그림자가 잘리는 소리를 생각했다
지난날 꿈속에서 달의 머리를 손질하던
어느 미용실 헤어드레서의 가위소리를 꺼냈다
낯선 소리의 터널 속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는 나에게 미용실 출입문은
입구조차 요새의 두꺼운 벽이어서
아내의 서툰 가위질에 맡긴 내 색채를 옅어진 생의 캔버스위에 흘렸다
가위에 잘린 이미지를 낳는 것도 내게 할당된 시간의 길이에 닿을 수 없어
다른 동네에서 내게 익숙한 가위소리를 찾아야 했다
3.
허름한 골목 한쪽에서 비스듬히 앓는 상호를 보았다
실내조명이 적당히 어둑하고 빨래건조대에 널린 수건이 적당히 낡은 곳,
이곳 이발사의 얼굴이 다이알 비누를 닮았다
마침내 나는 여기서 새 야누스의 문을 열었다.
댓글목록
힐링님의 댓글
힐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발소!
밀레 만종의 걸려 있는 풍경 사진과
까까머리에서 장발로
그리고 하이 칼라로 변신을 거듭해 온 남자들의
세계인 그 이발소!
이 추억의 장소를 소환해 내어
우리들의 시간들은 펼쳐 놓고 있어 감개무량합니다 .
아내에게 맡겨보는 머리! 하지만
이발소가 불러주는 그 추억의 산실에 있을 때
왕의 대접을 받는 부뜻함!
여자 미용실에서 누린다는 것은 다른 의미이죠.
신세대들은 익숙한 풍경이겠지만............
마침내 나는 여기에서 새 야누스의 문을 열었다
돌아가 잠시 앉아 보는 그 이발소 의자!
남자의 세계를 열어주는 것을
포착해 내어 시로 빚어 놓은 이 촘촘함의 은유와
비약으로 또 하나의 세계를 펼쳐 놓아
지금의 남자! 약간은 한물 간 남자의
뼈대를 세워 조각해 놓은 자코메티의
걸음 걸이의 조각품을 감상하는 것 같습니다.
나훈아의 턱을 빠지게 웃는다 .
의미를 다시 의미 하게 합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5년 이상 이용하던 이발소의 싸인볼이 멈춰 많이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예상치 못한 중병으로 이발소 문을 닫아야 하는 경우까지 갔습니다.
그동안 그분과 나눴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르더군요.
책을 좋아하던 그분은 다방면으로 지식을 갖춰
손님들과 맞춤형 대화를 이끌어 가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머리는 빠르게 자라고 미용실은 도저히 못 가겠고
아내에게 가위로 손질 좀 해달라고 해서 보니까 영 어색하고...
다른 동네로 갔는데 드디어 저에게 어울리는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아주 허름한 곳인데 저는 그곳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혼자 이발하고 그분이 머리 감겨주고....
저는 여자분이 머리 감겨주는 곳도 못 갑니다.
지금은 그곳이 단골이 되어
제가 특별히 말을 안 해도 저의 스타일로 머리를 깎아주어 아주 만족합니다.
좋은 하루 빚으소서 힐링시인님
이장희님의 댓글
이장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단풍이 곱게 물들었습니다.
이번 주말에 나들이라도 다녀 오세요^^
늘 건필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부족한 글에 맘을 얹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주말에 곤지암 화담숲에 다녀왔는데
단풍이 정말 곱게 물들었습니다.
늘 건필합십오. 이장희 시인님.
창가에핀석류꽃님의 댓글
창가에핀석류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수퍼스톰 시인님 잘 지내시는지요,
한 번 씩 경험하게 되는 이발소 정서를 잘 표현해 주셨네요.
저는 머리 손질에 익숙한 이발사를 수소문 하여 목욕탕을
옮겨 따라 다니기도 했었죠.ㅎ
15년의 시간이라 서운하셨겠네요.
비스듬히 앓는 간판이 눈에 쏘옥 들어와서 아주 좋습니다.
잘 감상했습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랫만입니다. 석류꽃 시인님,
잘 계시지요?
제가 단골로 이용하던 동네 이발소 주인은 저와 대화 코드가 맞아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문을 닫았습니다.
새로 찾은 곳, 딱 제 스타일입니다.
팔,구십 년대 풍의 정감이 가는 이발소 입니다.
행복한 한 주간 되십시오. 석류꽃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