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소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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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 개강을 앞둔 모 대학 캠퍼스 안이
아직 절반은 겨울을 건너지 못했다
산 중턱에 이름을 얹어놓은 이 대학 캠퍼스 안 인공연못 주변에
관절이 녹슨 채
경직된 침묵을 번식하고 있는 빈 그네가
색깔 바랜 벽화 속의 요람처럼 아늑했다
태양이 서산을 한입 베어 문 텅 빈 교정,
나를 훑는 시선이 없음을 확인하고
바람을 정갈하게 빗질하는 솔잎의 볼륨을 들으며 그네에 앉아 땅에서 발을 떼었다
관절에서 흘러내린 서문에 미처 기록ㅎ라지 못했던
이끼 낀 석상의 외침이 들어있었다
오늘 낮 지도의 맨 뒷장을 넘길 때까지만 해도
지금 발밑에 널린 세상의 현기증이 내 뒤꿈치를 깨물지는 몰랐다
거절할 수 없는 지상의 풍경,
관절의 이동 폭이 벌어질수록 노을이 걸린 뼈의 색채가 누런 보리밭처럼 일렁였다
생의 상승과 하강 순환 주기 틈새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자리를 옮겨 다니며
사구를 쌓았는지 모른다
한 줄 문장으로 요약될 수 없는 생의 그네,
정답과 오답 사이에서 진동자처럼 흔들렸다
발이 땅에 닿았다
혀가 없는 토르소의 침묵에서 죽음을 베어 문 외침을 들었다
천 년의 밤을 담은 침묵의 외침이었다.
댓글목록
힐링링님의 댓글

침묵의 외침을 들었다는 것은
생이라는 그네 죽음이라는 그네를 직시했다는
뜻이 아닐까요.
이 그네는 둘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
일생동안 이 그네를 타면서
의식한 듯하면서 의식하지 못하고 무한 공간으로
생각하는데...........
이 착각이라는 순간 속에서 사는 것을
포착해서 정교하게 엮어 놓아
생과 사의 이 간격이라는 하나인 것을
자각하게 합니다
일상에서 세밀한 관찰의 시선이란 이처럼 사물을 대한
내밀함과 생과 결부된 것을
해부하는 힘이란 이처럼 크다는 것을 발견하게 합니다.
정답과 오답을 사이에서 진동자처럼 흔들렸다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겨울 풍경 속에서
생과 사의 그네가 추라는 정점에 다다르게 하는
지고지순한 힘이란 무엇일까요.
큰 감동으로 젖어 오게 합니다.
먼 길을 걷다가 카페에서 커피의 한 잔으로
생의 희열을 느끼는 것처럼
오랜 갈증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오늘도 시인님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장문의 긴 시평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횡설수설하며 늘어 놓은 제 시에 비해 시인님의 격조 높은 평이
제 글을 부끄럽게 합니다.
캠퍼스 내에 있는 빈 그네를 혼자 타며 생각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네가 흔들릴 때 높이에 따라 보이는 것도 다르게 다가오는 사물이 새로워 보여
주절거려 봤습니다.
부족한 시에 시인님의 따뜻한 마음을 얹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힐링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