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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잃어버린 이름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1활연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704회 작성일 21-03-27 10:31

본문

오래전 잃어버린 이름들

      활연




  저물녘 지게 뒤를 흰 치마 나풀거리며 따라가던 소녀입니다 엄동에도 시냇가 살얼음 걷고 빨랫감 쓱쓱 비비던

  담 너머 아저씨도 환해 보이던 이웃 마을 작은 머슴도 좋아 보이던 흙마루에 앉아 빗방울로 해넘이 그리던 우물 두레박 내리다 물동이 이고 집으로 돌아올 때 산마루 걸린 달물 휘저어보던 바로 그 소녀입니다

  까마귀떼 날고 천둥 번개 치고 우렛소리 대추나무 부러뜨려도

  별안간 소녀입니다 장갑차가 발목을 으깨고 더러운 문뱃내 끼얹고 백설을 샅샅이 파먹는 눈알 없는 짐승들이 우글거릴 때도 눈앞에 절벽만 두고 숨 쉰 소녀입니다 비루먹은 개들도 비웃던 찌그러진 소녀입니다 시궁쥐들이 핥아먹을 때에도 빛나는 소녀입니다 육탈 해골에 바퀴벌레 슬어도

  몸서리치게 소녀입니다

  푸른 하늘 은하수와 동구 밖 느티나무와 눈밭 뒹굴던 삽살개와 할배와 할매와 어린 동생이 오빠가 그리운, 그리운 엄...니와 아버...지,

  너무 멀리 있는 소녀입니다

  총알이 육신을 뚫고 총검이 머리통 베어내고 하이에나 뜯어먹고 늙은 사자가 피 묻은 입을 핥아도 겨우 살아 꿈틀거리던 아무리 벗어던져도 아무리 짓밟아도 모진 세월 할퀴고 죽여도 죽어서도

  묵시로 항거로 청동으로

  오래도록 썩지 않을 청초한 소녀입니다 기어코 소녀입니다





댓글목록

레떼님의 댓글

profile_image 레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련합니다. 흑백의 시간으로 문득 다가서서 수줍게 웃고 달아나 버리는 그런......
파토스, 파토스, 파토스,,,,,
시인님의 감성은 세월도 비켜가는 것 같습니다

잘 감상하고 파토스 한바가지 담아 갑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희양님의 댓글

profile_image 희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를 읽으니 어느 소녀 둘이 기억됩니다

소소한 가정에 맑은 영혼으로 살아가는 소녀
두소녀가 서로 손잡고 도란도란 걸었을 그 길에서 만난
짐승들의 시간 앞에

밤새 댓글을 쓰고 싶어집니다.

그대로조아님의 댓글

profile_image 그대로조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5~60년대 멀어진 흑백의 추억을
소녀를 통해 소환하는
흘러간 과거를 유추하게 하는 필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활연시인님 풋풋한 봄날이 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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