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최마하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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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마하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57회 작성일 18-08-26 23:19본문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님아 돌아오오 ~♬"
다시 노랠 부르는데 소파 옆 바둑판 위에 빈 박카스 병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간주 중에 그것들도 쓰레기통에 넣었다. 헌데, 버리면서 보니 병속에 박카스가 아주 조금 남은 듯싶어 다시 꺼내 뚜껑을 세게 조였다.
“♬왔네 왔네 이런 날이 왔네 좋은 날이 왔구나
참고 살길 잘했지 열심히 살길 잘했지 ~♬"
오늘따라 에어컨 옆에 걸려있는 그 사람의 사진 앞에 자주 가서 서게 된다. 염색을 한 것일까.. 아님, 원래 흰머리가 전혀 나지 않은 것일까.. 주름도 많이 없고 머리는 온통 까맣다. 피부도 뽀얗다. 요리조리 뜯어보며 미소 한번 짓고.. 또 가서 한참 있다가 다시 또 가서 한참을 바라본다. 벽시계는 며칠 전부터 터벅거리더니 오늘은 더 지쳐보인다.
“♬왔네 왔네 이런 날이 왔네 좋은 날이 왔구나
참고 살길 잘했지 열심히 살길 잘했지 ~♬"
그 사람이 공연을 가서 연습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아주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 사람이 주로 앉는 자리의 소파 팔걸이에 내가 가서 앉는 횟수가 잦다. 평소보다 마이크를 좀 더 입 가까이 대고 불러본다. 두 손으로 마이크를 꼭 감싸 쥔 채 오래도록 그렇게 했다.
ㅡ여보, 여보 있잖아요 재잘대는 마누라
아빠, 아빠 게임해요 조르는 아이ㅡ
K사 반주기 바로 옆 보면대 위엔 그 사람이 연습하던 페이지가 늘 펼쳐져 있다.
불러본 적 물론 없지만 가사가 맘에 꼭 든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이 아직 조금 남아있을 무렵 연습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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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6일 일요일
태양이 뜨겁다. 걸음이 바쁘다. 발걸음이 가볍다.
어젠 그 사람이 온종일 연습실에 있는다 해서 오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오후 내내 내가 써도 된다했다. 가슴이 설렌다. 연습실로 향하는 내 가슴이 늘 처음처럼 설렌다.
"♬좋은 남자 만나서 팔자 한번 펴보자
이리재고 저리재고 이것저것 따져보고 ~♬"
이젠 그 사람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주아주 못 보기야 하겠는가마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2시까지이고 그 사람은 2시 반 이후에나 온다 했으니 만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처음 그 사람에게 전해 들었을 때 ‘2시까지만 하면 되죠?’ 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지만 정말 그런 것은 아니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그 사람의 스케줄을 따로 물어야 한단다. 다행이다.
“♬그 얼마나 기다렸던가 당신 같은 사람 만나길
거센 바람 휘몰아쳐도 두 손 잡고 살아봅시다 ~♬"
세 개나 되는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하는 연습실.. 그 반대쪽에 위치한 내가 나다니는 쪽의 문은 하나지만 그 문을 열고 들어와 대여섯 발자국 걸으면 또 다시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고 그 커튼은 다른 네 개의 문처럼 늘 닫혀있다. 연습실 안에 나 있는 세 개의 창문도 언제나 닫혀있고 그 중, 옥상에서 내다보이는 창문은 다른 두 개의 창문과 달리 커튼마저도 늘 가리워져 있다. 한 번도 걷혀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괜찮다. 어디로 공기가 통하나 싶을 정도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니, 그래서 더욱 좋다.
“♬당신이 몰라서 그래 내 나이 되 봐
어디라도 훌쩍 떠나고 싶지만 ~♬"
목이 메어온다. 눈물이 흐른다.
“흠! 흠!”
몇 번을 그렇게 목을 가다듬었다가 눈물을 훔쳤다가 하는데 책상 옆 작은 수납장 위에 캔 커피 두 개가 눈에 들어온다. 빈 것이다.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넣으려는데 쓰레기통 뚜껑에 커피인듯한 얼룩이 묻어있다. 이미 굳은 것들이다. 화장지 두 장을 뽑아 물을 조금 쏟아 적신 후 한참을 닦았다. 쓰레기 통 뚜껑이 환하다.
“♬좋은 옷도 못 사주고 좋은 차도 못 태워주고
맘이라도 편하게 해줬어야 했는데 ~♬"
소파 테이블 아래 칸에 있는 얇은 책 몇 권이 조금 흐트러져 있어 간주 중에 네 귀퉁이를 가지런히 맞춰본다. 중요해보이진 않는다.
“♬드라마 속 다이아반지 사줄 수는 없지만
맘이라도 편하게 해줬어야 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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