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를 논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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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논술하다. /배월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여대생이 책에 밑줄을 긋는다.
옆자리 노신사 이마에 주름이 아무리 봐도 꼭짓점을 만나지 못한 평행선이다. 근심스런 날들이 주소를 변경할 때마다
이삿짐을 옮기며 살아냈던 날들을, 밥풀 같은 날들을 기억하기 좋은 밑줄 같다.
퇴근 후, 나는 하루치 밥벌이를 긋고 누웠다. 종일 반듯 주름을 세운 하얀 가운이 바람이 내민 굽은 등을 긁어주다가
집으로 돌아온 저녁,
밑줄 친 고샅길에서 어느 난생을 더듬다 흠칫 놀랜다.
이마는 밑줄을 그으며 평생 읽어야할 책 한 권이다. 이마는 밑줄을 그으며 평생 넘어야할 거대한 산맥이다. 알고 보면
밑줄이나 주름이나 다랑이 논배미에서 추출한 밥 무덤이다.
그래서 한 생애를 통 털어 바람의 연혁은 이마에 기록한다.
댓글목록
성영희님의 댓글

앳된 여대생이 그은 밑줄과
노신사 이마에 새겨진 주름
그리고 밑줄과 주름사이에 펼쳐놓은 무한한 사유가
다랑이 논배미까지 흘러가네요.
좋은 시 감사해요.^^
배월선님의 댓글의 댓글

시인님
감사합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써보고 싶었는데 마구 내달렸네요~~
이시향님의 댓글

저도
세줄 굵게
그어져있어요~~
임기정님의 댓글

밑줄 쫘악~~
배월선 시인님 시 읽으며
마우스로 밑줄쫙 긁으며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문정완님의 댓글

월선언니야 지하철에서 한 건 했네 ㅎ 찰나의 순간을 낚어채어서
사유가 깊은 바다를 풀어 놓았네
몽땅 한꺼번에 두손 모아서 인사드립니다
코로나19로 우울한 날들이 이어집니다
다들 건강하게 무탈하게 계시죠
가끔 눈팅은 째려보면서 하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하게 봄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