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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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들
가만히 구멍을 보고 있다
마음을 내려놓으라는 듯 눈의 초점을 풀어놓은 구멍
갑자기 가슴 한편이 따스해지고 있다
어떤 마법에 걸리기라도 한 듯
구멍에 대한 좋은 기억이라도 있는 것처럼 포근해지고 있다
가슴이 고요해지고 있다
구멍은 태초부터 그런 곳이다
열쇠가 들어오기 전까지 열쇠 구멍이 그랬고
딱따구리가 파 놓은 나무 구멍에 새가 둥지를 틀기 전까지
살고 있던 그 적요를 본 적 있다
그런 구멍들은 이날까지 단 한 번도 스스로 부산해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천만년에 한번 햇빛이 들어올지언정 투정을 부려본 적도 없고
지나가는 생쥐에게 자신을 임대해달라고 푯말을 내 걸지도 않았다
어쩌다 눈발이 힐긋거리듯 흩날려도 묵묵하였고
햇빛에 쫓기는 다급한 구름의 걸음을 숨겨주기는 하였어도
언제나 피동적인 구멍들
세상을 다 삼켜도 모자란다는 그 목구멍도 죽는 순간까지도
허기를 말하지는 않았다
배가 고프다는 말은 허기가 소리를 전했을 뿐 목구멍은 침묵했다
바람에 쫓기던 햇빛이 잠시 구멍 속으로 몸을 피하였다가
몸을 폴더폰처럼 꺾었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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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임기정님의 댓글

우와 왔다매 구멍들 시 참 좋네요
아부 절대 아님
- 긁적
아주 잘 읽었습니다
오영록 시인님 제가 드 릴 것 은
엄지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