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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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의 아버지
이명윤
신부의 아버지가 직접 쓴 시를 낭독하고 있었다. 떨리는 목소리 사이로 봄날의 꽃가지가 흔들리고 있었고 웅성거리는 하객들의 표정이 하얗게 조명에 비치고 있었다. 그의 언어는 쉽게 의도를 드러내었고 행간의 긴장은 느슨하였으며 잦은 감탄사의 등장은 십수 년 간 익혀온 시의 불문율을 흔드는 것이었다. 또한 그의 감정은 안에서 머물기보다 밖으로 나아갔고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비유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나는 낭독이 끝날 때까지 조금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행간마다 딸과 사위가 앉아 있고 휘둥그레 눈을 뜬 하객이 있고 침묵하는 피아노가 있고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아내가 있었다. 그가 얼마나 그의 딸을 사랑하는지 그가 자주 걷던 동피랑 언덕을 따라 당도한 이 아름다운 봄날, 이 아름다운 꽃, 이 아름다운 시간, 한 구절 한 구절을 뚝뚝 색종이처럼 곱게 잘라서 그녀의 눈에 넣어주고 그녀의 귀에 들려주고 그녀의 붉은 두 뺨에 흘려주고자 하는지 보았으므로. 모두들 일어나 뜨거운 갈채를 보낼 때, 나는 얼른 집에 가 아무도 읽지 않는 시집을 찾아 따뜻한 봄볕에 내어놓고 싶었다.
- 『0과 1 문학』 2023년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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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님의 댓글

명윤님!
얼른 집에 가 아무도 읽지 않는 시집을 찾아 따뜻한 봄볕에 내어놓고 싶었다.
이 마음을 짐작하느라 한참을 머물고 있습니다.
안녕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