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옆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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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옆집
이명윤
긴 줄을 기다릴 수 없어 간
옆집은 한가하고
옆집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일어서려다 마침
물병과 메뉴판을 들고 나오던
주인 여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눈이 마주칠 때 세상은 수평이 된다
우리는 동시에 앉았고
어른들이 읽는 동시처럼 무척 슬펐다
황량한 사막에서
조용히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낙타가 멀뚱 큰 눈을 굴리며 창밖을 지나갔다
옆집은 억울하여
깊은 한숨으로 가득 차 있다
주문한 음식을 하나 둘 내려놓고
먼 나라 여인처럼 돌아앉은
옆집의 등을 본다
누군가 찾을 때마다
수학 문제 정답처럼 알려 준 맛집의 옆집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여자에게
숟가락을 든 채 돌아보며 나는
찌개가 참 얼큰하고 맛있다고 말하려다,
그만두었고 대신 눈이 시리도록
차가운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한 번도 맛집이 되어본 적 없는
옆집의 날들이 있다
나도 맛집 옆집에 산다
-계간『시와사람』2023년 겨울호, 신작초대석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명윤님!
맛집 옆집 옆집을 보세요.
거기 남제가 산답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맛집 옆집
공감 가는 시 입니다
시가 야무지게 맛 있었습니다
역시 맛집 시는 다르긴 다른가 봅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늘 마음의 온기가 있는 이명윤 시인님
시도 시인님의 성품을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