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가 우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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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가 우는 저녁
이명윤
고라니가 운다 오래전
이불 밑에 묻어 둔 밥이라도 달라는지
마을의 집들을 향해 운다
사람의 울음을 고라니가 우는 저녁
몸속 울음들이 온통 애벌레처럼 꿈틀거린다
수풀을 헤치고 개울을 지나
울타리를 넘어 달려오는 울음의
발톱이 너무도 선명해서
조용히 이불을 끌어당긴다
배고파서 우는 소리라 하고
새끼를 찾는 소리라고도 했다
울음은 먼 곳까지 잘 들리는 환한 문장
지붕에 부뚜막에 창고에 잠든
슬픔의 정령이 일제히 깨어나는 저녁
나는 안다 마당의 개도 목련도
뚝 울음을 그치고 달도 구름 뒤에 숨는
오늘 같은 날엔
귀 먹은 뒷집 노인도
한쪽 손으로 울음을 틀어막고
저녁을 먹는다는 것을
-2022 한국작가회의 연간시집,
『나는 봄이다』수록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명윤님!
통영
그 언덕에 새하얀 집이 생각납니다.
벌써 수 년이 지났네요.
뒷집 노인의 고라니 울음이
여기서도 들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김용두님의 댓글

울음, 슬픔의 정서는
이명윤 시인님의 시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 같습니다.
울음은 먼 곳 까지 들리는 환한 문장/
가슴이 뻥 뚫이는 것 같습니다.
늘 건안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임기정님의 댓글

이명윤시인 올해는 건강 행복 기쁨이 충만한 해 되세요
새해 복 이따시 만큼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