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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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시인의 눈으로 본 천자만평 24.12.13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주지하다시피 안톤 쉬낙크의 산문 제목이다.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초가을 햇살이 내리쬐는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오색영롱한 깃털의 작은 새의 시체가 눈에 띄었을 때/ 대체로 가을철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이를테면 잿빛 밤 소중한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져 갈 때/그리고 나면 몇 주일이고 당신은 다시 홀로 있게 되리라`로 시작되는 산문을 읽으며 중학교 시절의 감성을 충분히 만족시키는 명문장이다.
슬픈 감정은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이별, 관계, 사회적 이탈 등등의 많은 사건과 이벤트에서 감정의 수위와 감정의 폭은 다르겠지만 그 깊이는 비슷할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반대편에 있는 기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만남, 사랑, 평안한 삶과 정당한 노력과 정당한 대가를 획득할 수 있는 사회. 살아 보니 산다는 것은 ‘이 또한 다 지나가리’에 해당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 지나가도 주홍 글씨처럼 선명하게 가슴에 박혀 있을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시적으로 치유될지는 몰라도 드문드문 역사라는 이름으로, 그때 그랬지라는 말로 가슴을 후벼파는 일이 있다. 어쩌면 그런 지워지지 않는 일들이 정작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세상은 물고 물리는 꼬리물기의 연속이다. 원인에 의해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 진리이지만 간혹 결과가 원인을 바꿔버리는 본말의 호도가 생길 수도 있다.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역사는 승리자의 몫 혹은 편이라는 말을 한다. 사실 우스운 이야기다.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 다만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말일뿐, 잠시 바뀌는 척을 할 뿐 진리는 진리다. 그것이 삶이 퍽퍽해도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되는 이유다.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보다 더 슬픈 것은 우리가 우리를 슬프게 할 때이다. 가을이, 고독이, 홀로라는 말이, 소중한 이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져 갈 때보다 더 슬픈 것은 당신이 나를, 내가 당신을, 우리가 당신을 슬프게 할 때가 더 아픈 이벤트다. 사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내 노력으로 슬픔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슬픔의 어느 한 부분은 이겨내지 못할 슬픔이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를 슬프게 할 때이다. 가장 쉽게 슬프게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 가장 슬프게 한다는 것은 생의 한 지점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우두망찰하게 만든다.
우리가 우리를 기쁘게 할 때라는 산문과 글을 쓰고 싶다. IMF 시절의 박세리 선수가 그랬듯. 어른이 없는 시대다. 성철 큰 스님과 김수환 추기경과 이름도 희미한 몇몇 철학자가 그 시절의 어른이었다. 아이 같은 조롱과 칭얼거림만 남아 있는 사회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 사회일까? 겨울이다. 따뜻한 선술집에서 소주 한 잔을 마시며 얼큰하게 취해 귀가해 마누라에게 얻어터지고 싶다. 이 겨울, 거리에서, 광장에서, 밤새도록 서성거려야 하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 헌법 제1조 2항이 눈시울을 스친다. (김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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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따뜻한 선술집에서 소주 한 잔 마시고 싶다.
얼큰하게 취해 귀가해 마누라에게 얻어터지고 싶다.
나도 그렇다.
金富會님의 댓글의 댓글

맞으면 아픕니다. ㅠㅠ
세상 참..어렵습니다.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