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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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사람
이명윤
없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말이 없는 사람
이해하지 않아도 되고
바람이 불어오는 먼 곳에 있는 사람
하나, 둘, 셋, 넷,
숫자와 숫자 사이로 사라지더니
눈이 마주치자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던 사람
흰 눈이 내리고 우리는 신이 나서
없는 사람을 만들고
없는 사람 모르게 웃었습니다
없는 사람이 가끔 멀리서
우리의 세계를 바라볼 때 그는 마치
마술에 걸린 사람 같았습니다
그날 옥상에 서 있던
없는 사람이 만드는 날씨,
없는 사람이 홀로 부르던 노래,
영화가 끝나자 사람들은
세상이 다 끝난 것처럼 한동안 검고 흰 허공을 보다가
빈 팝콘 박스를 들고 뿔뿔이 흩어졌지만, 나는
아이들 어깨 너머로 천천히
얼굴과 심장이 흘러내리며 비로소 웃던
없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없는 사람이 끝까지 보고 있던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도
이 어둡고 쓸쓸한
영화관 복도를 지나면
곧 마주칠 햇살에 금방 녹아 버릴 테고
그렇게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사람으로
눈부시게 완성되는 것이겠지요
-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 』 (걷는사람 , 2024)
댓글목록
장승규님의 댓글

오늘이 입춘이라지요.
눈이 녹으면 봄이 된다지요.
누군가 눈이 녹으면, 녹내장이 된다고 해서 웃었답니다.
좋은 시 감사합니다.
임기정님의 댓글

이명윤 시인님
눈사람 참 재미있게 표현해 주셨네요
예 맞습니다
없는 사람을 겨울이면
꼭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 둔갑시키니까요
회장님 댓글 읽고 한참 웃었습니다
이시향님의 댓글

저도
없는 사람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