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단체가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비판을 하므로 불필요한 논란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똥오줌 못 가리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자기들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사이비 이단 종교에 빠진 사람도 불쾌감을 줍니다. 교주에 성향을 따르며 추종하며 순종하며 타인들을 우려시킵니다. 신앙생활은 가정에 평안을 안겨줘야 하는데 이분들은 가정을 파탄시키고 이혼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감입니다.
이 나라 국가는 종교의 자유를 줍니다. 종교는 정치의 중립을 지켜야하는 데 그렇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예수님도 예수님 제자 분들도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목사들이 정치에 개입해 특정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옹호하거나 비판을 해서 무신론자들이 기독교를 개독교라고 하시는 분들이 증가합니다. 이분들 때문에 기독교 교계가 전체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참 슬픈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볼 일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각자의 성향이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름의 이해성이 부족합니다. 내 생각이 다 틀린 것도 아니지만 옳은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길을 물을 때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길을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쪽 코너에 호프집이 있거든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돌면 막걸리 집이 보입니다. 거기서 300미터 직진하면 됩니다."
목사님에게 길을 물으면 당연히 "저기 교회 보이시죠? 네 그 교회를 지나서 100미터 가면 2층에 교회가 보입니다. 그 교회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됩니다."
사람들에게 '+' 가 그려진 카드를 보여주면 수학자는 덧셈이라고 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배꼽이라고 합니다. 목사는 십자가라고 하고, 교통경찰은 사거리라고 , 간호사는 적십자라고 하고, 약사는 녹십자라고 대답합니다.
모두가 다 자기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다른 사람이 (틀린)것이 아니고 (다를)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늘 이해의 대상입니다.
세 사람의 생각을 살펴보겠습니다.
세 명의 친한 친구가 세계에서 가장 큰 협곡인 ‘그랜드캐니언’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한 친구는 그랜드캐니언을 보자마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정말 장관일세. 그림보다 더 멋진 장관이야. 이 모습을 화폭에 그리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네.” 이 사람의 직업은 미술가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두 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람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하나님의 솜씨이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참으로 자연을 웅장하고 오묘하게 만드셨어.” 이 사람의 직업은 신학자였습니다.
세 번째 친구가 말했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여기서 소를 잃어버리면 도저히 찾을 수가 없겠는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야.” 이 사람의 직업은 카우보이였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같은 세상도 다르게 보입니다. 다들 사람의 성향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데 애썼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김용호 《영원의 양식》 중에서 ☆★☆★☆★☆★☆★☆★☆★☆★☆★☆★☆★☆★ 무식하게 우기는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