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전에 김무일 옛소대장님께서 제게 메일 한통을 보내왔습니다.
'꽁까이의 보은' 이라는 감동적인 베트남 참전 당시 이야기인데,
(박시호의 행복편지)에 실린 글입니다.
오래전 젊은 날의 옛일이 떠올라 답글을 올립니다.
'꽁까이의 보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 병역의무를 필하려고 해병대 초급장교로 지원 입대하여
‘베트남’전에 참전하였습니다.
전투부대 소총소대장으로 수개월째 소대원들을 이끌고 생사의 고비를 넘던 중,
월남전 중 가장 치열했던 68년도 구정 공세날 새벽녘~ 위험에 처한 청룡부대
제10중대를 구출하라는 임무를 받고 며칠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포위망을 뚫고 (중대장을 잃어 가며)
임무를 완수하고 귀환 도중…. 폐허가 된 마을을 지나면서,
기둥에 목줄이 매여 며칠째 물 한 모금 못 먹은 빈사상태의 개 한 마리를 보게 되었습니다.
전령 ‘유재호’ 상병에게 개줄을 풀어 데려갈 것을 명하니,
마침 옆에 있던 선임하사 ‘천철수’ 중사가 말리길 “소대장님예… 살지도 몬할낀데 모할라꼬 쌩고생할랍니껴?”
제가 답하기를 “살릴 때까지다! …데려가자!” 귀하게 아끼던 수통물을 그놈 입가에 대고 벌컥대며 먹이고,
씨레이션, 전투식량을 까 먹이며 귀대하였습니다.
하루하루 원기를 회복한 ‘꽁까이’(소대원들이 붙여준 개이름)는 어느덧 튼실하게 잘 자라 주었고,
우리 수색중대의 ‘마스코트’로 성장하여 주인을 알아보듯 고마운 표정으로 항상 제 곁을 맴돌며
자나 깨나 저를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있던 약혼녀의 편지에 ‘꽁까이에게 너무 마음 뺏기지 말라’는 경고도 수차례 받곤 하였답니다.
그런 ‘꽁까이’와의 밀월도 몇 달~. 이제 소대장 임기도 거의 끝날 무렵인 어느 날….
치열한 공격명령이 하달된 전투에서 마지막 고지탈환의 돌격선에, 철벽 같은 ‘베트콩’의 철조망과
지뢰밭에 봉착, 전소대원이 소낙비 적탄 속의 몰살 위기에…. 저 지뢰밭 속에 단 한 발만이라도 폭파되면,
그 길로 돌격돌파가 가능할 텐데…. 오직 그 생각뿐인 소대장의 간절한 소망…. 그렇다고 부하를 그 속에
뛰어들게 할 수도 없는 소대장의 아픈 마음…. 결국 이 위험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소대장이 뛰어들어
부하들을 살릴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 적탄은 빗발치고…. 여기저기 소대원의 비명소리….
약혼녀와 부모님의 얼굴도 잠시…. “얍 !!!…. 부하들의 목숨을 위해…. 이 한몸을…!”
벌떡 일어나 지뢰밭으로 뛰어들려는 순간…. 나의 방탄조끼 밑에 겁먹고 쭈그려 있던 ‘꽁까이’가
어느새 앞질러 뛰어 들어가, 어느 지점의 지뢰를 폭발시켜 주인 대신 처절히 산화하였고,
그와 동시에 전 소대원이 함성를 지르며 공격을 개시하여 고지를 점령하였던 그날이….
‘항상 친애하는 박시호 동지의 행복편지’를 열어 본 오늘 아침…,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40여년 전 옛일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스물여섯의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짧은 인생을 영원한 조국에…!!” 노산 선생의 어록에서…. 꿈 많던 시절이었습니다.
혹시 아시나요. 베트남어로 ‘귀여운 아가씨’를 지칭하는 ‘껀까이’를.
한국군 사병들은 편한 발음으로 ‘꽁까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우리 부대의 마스코트 충견 ‘꽁까이’가 소대장 대신 장렬히 산화하기 한 달쯤 전인가….
청룡부대의 ‘용궁작전’에 투입, ‘호이안’ 외곽지역을 수색하던 중… 베트콩 정규군과의 치열한 공방전 끝에
수적으로 우세한 적에게 역포위를 당하게 되어, 적군의 필사적 공세로 아군의 보급지원이 끊긴 채
40여 명의 소대원들과 함께 사흘째 굶으며 철벽 같은 포위망 속에 고립된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실탄, 탄약은 물론 식수, 전투식량(씨레이션)까지도 고갈된 지 나흘째. 전투원의 투지도 한계를 벗어난 듯
소대장과 선임하사를 비롯하여 전소대원이 섭씨 40도를 웃도는 열대의 뙤약볕에 언제 공격을 시도할지 모르는
불안과 초조…. 사흘을 꼬박 새우며 불면, 그리고 허기지고 목마른 고통의 나흘은 지옥의 문턱을 연상케 하였습니다.
주변 전투상황이 여의치 못해 공중지원도 불가능하고, 주변엔 적의 독극물 투여로 식수도 구하기 어려운 극한상황에서
소대장의 책임감도 (소대원들을 살려야겠다는 절박감으로) 절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소대원들은 진지에 흩어져 정글 곳곳을 뒤지며, 혹 요깃거리를 찾곤 하던 중…,
1분대장 ‘박인화’ 하사가 개울가에서 어미 잃은 주먹만 한 새끼오리 십여 마리를 잡아 와,
철모에 물을 담아 삶는 냄새는 잠시 우리들 모두가 행복을 만끽할 만큼 구수하였답니다. …
즉석 요리로 둘러앉은 3명의 분대장과 선임하사관, 그리고 위생하사와 소대장 ….
이렇게 허겁지겁 집어 든 순간
소대장의 눈엔, 멀찌감치에서(안 보는 척) 우리들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소대원들이 마음에 걸려…
즉시 중단시켜, 철모 속의 한 움큼도 안되는 그것들을 소대원들이 보는 가운데 맨땅에 쏟아 부을 때,
깜짝 놀란 분대장들에게 “소대원들과 함께 고통을 참아 내자!”고 달래며 시종 코끝을 킁킁대며 주변을 돌던,
허기진 ‘꽁까이’에게 먹게 하였습니다.
‘꽁까이’ 역시도 주인의 마음을 읽었던지 끝끝내 먹지를 않았습니다.
‘소대장은 언제나 소대원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독수리의 공격에서 목숨 걸고 병아리를 품어 살려야 한다는 전술교관 ‘라스패기’ 소령의 명언으로
극적인 전투상황을 돌파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꽁까이의보은1(박시호의 행복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