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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선경문학상 - 염민숙 -뱀과 침대 외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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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33회 작성일 26-01-24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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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선경문학상 - 염민숙 -뱀과 침대 외4편

뱀과 침대

길을 다 건너지 못한 뱀처럼 한 사람이 침대를 건너가고 있다

길을 가다 뱀에 물리는 일과 첫사랑을 만나게 되는 일 중 어느 쪽 확률이 더 높을까

한 사람이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침대를 건너가자

향이 다른 침대가 되었다

낯선 거리의 향이 이불에 스며 있다

이불에 체취를 남기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침대를 넘어왔을까

낯선 향을 악물고 놓지 않는 이불을 들고 뒤돌아보면

사라지는 꼬리가 침대로 스며든다

뱀이 바위 틈새로 스며드는 것처럼 사랑을 집어삼키고

집어삼킨 사랑이 삭을 때까지 바위와 침대 사이에서

들어간 굴에서 쇠잔한 사랑을 계산한다

땅속에 알을 낳고 가버리는 뱀의 양식

긴 꿈을 묻었지만 깨어나지 않는 침대의 미래

길을 다 건너지 못한 뱀처럼 한 사람이 침대를 건너가고 있다

허물을 벗듯 침대를 버리는 일과 침대에 누우면 허물이 나오는 사람을 버리는 일 중

어느 쪽 확률이 더 높을까

길을 가다 뱀에 물리면 물린 자리를 도려내고

오래도록 피를 닦아야 했다

수혈

자꾸 어지러워요 내 얼굴이 몹시 창백하다고 친구가 말해요 변기 속을 살피라고 해요 새하얀 변기는 무언가를 찾기에 최적화되어 있으니까요 위장을 지나온 색다른 색깔을 정직한 변기가 알려줄까요

함께 따먹은 산수유 때문일까요 시디신 산수유 길 생각하면 침이 고이죠 우리 사랑은 산수유로 익어가나요 꽃피우려다 밟히는 중인가요 눈밭 산수유같이 선명한 사랑을 그리다 우리는 죽는 건가요

참을성이 많은 나는 괜찮다고 해요 참다 보면 어지러움도 안전하게 익어가죠 수혈을 받아야 산다고 의사는 말해요 변기 속이 검은 나는 남의 피가 싫다고 해요 어느 색을 감춘 피인지 모르잖아요

침상에 누워 수혈을 받아요 피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니 피를 받아요

사랑도 남의 피를 수혈받는 거잖아요 받지 않았으면 산수유 길이 시작되질 않았겠죠

우리는 흰 길을 수혈받았어요 흰 길은 눈에 띄지 않는 창백한 길이죠

창백한 길을 가다 보면 창백한 사람이 보이고 창백한 사랑이 보여요 흰 손이 흰 손을 잡으면 오래 서 있을 수 있어요

초록색 앵무새가 사는 방

나는 새를 분별하는 사람

가방을 던지고 앵무새를 꺼내 횃대에 올려요

해바라기 씨앗 껍질을 벗겨서 먹어요

우린 피 대신 씨를 먹어요

우리 양식은 씨앗이죠, 모래죠

괜찮아, 괜찮아 소금 맛 모래를 먹으며 앵무새가 말해요

앵무새는 귀가 깊어

귓속으로 들어간 죄는 모두 초록색 깃털이 됩니다

앵무새를 앵무새로 인정하는 봉인식은 하지 않아요

눈을 흘기지도 않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맞장구만 치니까요

내가 잘 때까지 눈을 깜박이며 한편이 되니까요

새가 사는 배경을 밝히는 나와

새가 죽는 배경을 밝히는 엄마

이제 우리 서로 눈을 닦기로 해요 귀를 닦기로 해요

방문을 열고 앵무새를 날려도

초록 깃은 죄를 가려주지 않아요 죄 사함은 없어요

붉은 죄를 내밀었으니 붉은 피를 내놓으라지만

초록 앵무새는 붉은 피가 없어요

나는 죄를 분별하는 사람

횃대를 치우며 괜찮다는 앵무새를 가둬요

피가 엉기지 않는 곳을 그리며 껍질을 뱉어요

내 편 없이 캄캄한 방에 죄를 쌓아요

설희

어느 밤은 딸기잼같이 말랑해

잼 같은 밤이라고 하면 너무 끈적한가

잼 같은 피가 흐른다고 하면 너무 무서운가

이제 서로의 가슴 같은 건 열어보지 말자

피가 하얀지 붉은지 관심 두지 말자

딸기잼을 퍼먹든지 발라먹든지 자유니까

설희라는 흰 딸기로 잼을 만들면 무슨 색이 나올까

버터와 다른 흰 잼의 밤을 나열해 보자

우리 피도 희어질 때가 많으니까

헤모글로빈이 잠을 잔다면 흰 피가 솟구칠 수도 있잖아

당신이 나의 밤을 헤집을 때 내 밤은 설희가 되기도 해

설희의 표면처럼 앙큼한 소름

내 흰 피는 수경재배 설희처럼 안전하게 자라니

당신과 내 피는 건드리지 말자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위의 어머니와 어머니를 꺼내려면

세계를 한 바퀴 돌아야 할 테니까

브라질을 하룻밤에 다녀올 순 없을 테니까

당신과 나 단일 민족이라고 자랑하지 말자

어느 밤은 흰 피가 잘 자게 내버려두자

어머니들을 다 꺼내려면 우리 밤은 하얘져

흰 밤이 눈부셔져

새로 빤 이불처럼 서로의 등을 쓰다듬고

피는 내버려두자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아래의 어머니를

설희의 하얀 밤들은 열어보지 말자

빛이 머무르는 순간


한 사람을 지나쳤는데 깊은 산에 들었다 나온 기분이다

한 줄기 빛이 머무르고 있다

그것이 영원이라면 지난 뒤 남은 향기가 계속이라면

잠깐은 영원이라는 케이크에서 살짝 찍어 먹은 맛이지만

케이크는 층을 가지고 있다

그녀를 뒤돌아보는 동안 하루가 지났다

한 층이 끝난 걸까

담배를 피우던 아저씨가 담배를 감추며 쳐다본다

담배 끝에도 빛이 머무르고 있다

그것도 풍경이어서 풍경 소리가 얹힌다

빛이 사라지고 저녁이 되었다

남의 가게 앞에 앉았던 시간

잡아당겨 가까이에 놓았다

영원에 끌리는 날이다

한 손으로 블루베리를 따서 파는 그녀에게 하루는 얼마나 얇은 층인지

한 사람을 지나쳤는데 깊은 저녁에 들었다 나온 기분이다

수상 소감

일련의 창작 과정들이 우회하는 삶을 이끌었습니다. 깊이 내린 기쁨과 상실을 그려 표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회로와 우회로가 충돌하는 속에서 선경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 무더기 빛을 안고 둘러보니 꽃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환히 피어 있었습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꽃피우는 것이 생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마다 성정이 다르니 생에 한 번 피우는 꽃도 있고 해마다 피우는 꽃도 있겠지요. 언제 필지 몰라도 타고난 바탕을 따라 끝내 꽃을 피우고, 세상은 다양한 색깔로 아름다워지는 것이겠지요.

선경문학상이라는 큰 상을 받게 되어 뜻밖의 큰 기쁨을 안았습니다. 선경문학상을 제정한 선경산업과 심사를 맡아주신 김종태 교수님 고봉준 교수님께 손 모아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어찌할지라도 사랑해 준 우리 가족과 친구들과 이 기쁨의 온도를 함께하고 싶습니다.

염민숙

전남 장흥 출생. 2015년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시집 『시라시』 『오늘을 여는 건 여기까지』 『밤은 너무 많거나 너무 적어』 제6회 선경문학상 수상

제6회 선경문학상 심사평

영원과 찰나를 아우르는 밀도 높은 낯설게 하기

제6회 선경문학상 수상자로 염민숙 시인을 선정하였다. 예심을 통과한 열다섯 분의 독창성 넘치고 패기 있는 작품집들을 숙독하면서 선경문학상이 지닌 위상을 체감하였다. 특히 시집으로 간행되기 전의 원고를 응모자 이름을 가린 채 심사하는 과정은 신선했다. 이번 심사는 그동안 선경문학상이 뛰어난 시집들을 수상작으로 선정할 수 있었던 이유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수상작 「뱀과 침대」 외 49편은 존재의 반어와 역설을 꿰뚫는 비극적 상상력을 통해 다채로운 이미지로써 밀도 높은 상징체계를 구현한 작품들이다. 부연하면 수상 작품들은 비극과 희극을 융합해 나가는 입체적 시정신, 사물의 이면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웅숭깊은 관찰의 힘, 자아의 운명에 대한 치열한 존재론적 성찰, 자연의 본질을 새롭게 현현시키는 낯설게 하기, 영원과 찰나를 오가는 우주적 시간의식 등을 통해 독창적 영역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의미심장하고 매력적인 사유를 지닌 구절들이 선자의 마음을 머물게 했다. 구체적인 예로 “긴 꿈을 묻었지만 깨어나지 않는 침대의 미래”(「뱀과 침대」)에 나타난 무시간적(無時間的) 영원성(永遠性), “눈밭 산수유같이 선명한 사랑을 그리다 우리는 죽는 건가요”(「수혈」)에 나타난 자아연민(自我憐憫)과 상실감(喪失感), “앵무새는 귀가 깊어/귓속으로 들어간 죄는 모두 초록색 깃털이 됩니다”(「초록색 앵무새가 사는 방」)에 나타난 고독한 원죄의식(原罪意識)은 예사롭지 않다.

이들 시의식은 다시 “새로 빤 이불처럼 서로의 등을 쓰다듬고/피는 내 버려두자”(「설희」)에 나타난 공존(共存)의 허무의식(虛無意識), “한 사람을 지나쳤는데 깊은 저녁에 들었다 나온 기분이 든다”(「빛이 머무르는 순간」)에 초월적(超越的) 숭고미(崇高美)로 확산되어 나아가고 있는데 이 과정은 염민숙의 내면구조를 형성시키는 긴밀한 축이다. 염 시인이 추구한 다양한 생각과 표현들은 궁극에 비극적 상상력으로 수렴되어 절차탁마한 고뇌의 과정을 뚜렷이 증거한다.

심사위원회 의견 일치로 개성 있는 시집을 뽑게 되어 마음이 뿌듯하다. 염민숙 시인이 한국문학사를 빛내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어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누구도 가 보지 않은 새로운 문학의 지평 위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이 염 시인에게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끝으로 선경문학상이 엄정성과 염결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우리 문화 발전에 더 큰 기여를 해 줄 것을 염원한다.

심사위원 고봉준 김종태(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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