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시사사 작품상 수상작 (나는 바닥부터 먼저 시작했다 외 / 김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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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시사사 작품상 수상작
나는 바닥부터 먼저 시작했다 외 / 김지율
여전히 한쪽에서는 돌이 날아오고
한쪽에서는 싸움이 이어졌다
사거리에는 십자가가 있고
우리의 규칙이 누군가의 목적으로 바뀔 때
내가 사랑했던 밤들을 시행착오라 해도
불길 뒤에서 헌 옷 수거함까지
덕지덕지 붙은 포스트잇과
벽제 화장터로 가는 길에서
어떤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인간으로부터 인간에게로
이미 지나온 곳에서
그 바다가 보고 싶었다
벽이 시작되는 어딘가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말할 때
그것은 다만 부족한 명분과 바깥의 기분
누군가를 마중 나가던 밤하늘의 별은 아름다웠고
크고 둥근 레몬을 기적이라 했지만
나에게 던져진 필살의 쾌도는 소리 없이 명중했다
날아가는 화살은 또 누군가의 등에 꽂히겠지만
나는 그 바다가 다시 보고 싶었다
강릉
모두 잠든 새벽달 아래 서서
여기가 지난 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조용한 막사 앞으로 긴 그림자가 지나갔다
이 계절이 지나면
폐장한 해수욕장의 파라솔 아래
쌓여있는 모래들
슈퍼 앞에 묶여 있던 개가
해변에서 멀어지는 사람들을
오래 바라본 그때처럼
도착하기 전에 흰 밧줄에 묶여
떠난 그들처럼
우리는 누구도 서로를 기억하지 않을 거라도
암도 없었던 것처럼
그 무엇도 증오하지 않을 거라고
바다로 난 길을 끝으로
흰 그림자 하나 달려 나갔다
멀리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이제 정말 슬프지 않다고
너는 천천히 총을 내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사과꽃은 피지 않았다고 한다
1
이 숲을 지나가는 무심한 시간들을 사과라고 치자,
2
사과는 빗속에서 커지는 나 사과는 푸른색 사과는 빨간색 사과는 조용하게 부풀어오른다 둥근 사과는 쪼그라들었다가 갑자기 터지는 10분 전의 로망
3
흰 트럭이 사과를 가득 싣고 저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나무에서 오래 흔들리는 사과는 언제나 나 사과의 바깥은 사과의 여백으로 가득하고
4
사과를 한 입 베어 물면
5
반복되는 사과의 구조와 반복되는 사과의 인내심 앞에서 사과는 사과의 부재를 증명하고
6
모든 것은 하나의 얼룩에서 시작되고 모든 꽃은 똑같은 무로 현현하므로
7
사과의 시간은 견고하고 사과의 공간은 넓다
반 토막 난 무릎으로도 울지 않는 것들이 한참 동안 곁에 있었다 작은 사과 속의 더작은 사과가 굴러올 때까지
8
어느 날 사과를 꺼내 다시 본다고 치자
수사마귀가 자신의 머리와 목숨을 암사마귀에게 내맡긴 것처럼 자살과 종교와 반항은 다르지 않아서 물속에서 퍼져나가는 푸른 잉크를 보며 사과의 윤리와 사과의 맹목에 대해 침묵하기로 했다.
9
햇빛과 돌과
어둠을 등져야만 떠날 수 있는 빈방과
- 『시사사』2022년 겨울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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