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만 4번째 시집/진찰(診察)/ 김부회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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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삶의 대상물에 대한 진찰診察을 찰기札記 하며
-주영만 4번째 시집/진찰(診察)을 읽고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가. 들어가며
시를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 것들이 차츰 변화하는 것을 느낀다. 처음을 글을 배우고 쓸 때는 삶에 대한 관조보다는 문장의 구성이나 아포리즘 등에 방점을 두거나, 시적 질감을 염두고 두고 글을 써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고, 삶의 방식들이 주관이 아닌 객관적인 것에 더 주목해서 보게 되다 보니 그 객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객관은 중립도 아니고 그렇다고 극단의 좌, 우 진영논리도 아닌 나만의 시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글을 쓰고 시를 쓰는 이유는 사람마다 저마다 다르고 방향이나 목적성이 다르겠지만 궁극의 목적은 지나온 삶을 기록하고 그 기록된 삶의 시간에 대해 각자의 성찰이 더해져 처방전을 내리게 되고, 그 처방전이 종으로 가면 미지의 것에서 오는 병리학적 현상에 대한 준비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내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의 반성과 그것에 대한 나의 고백들이 결국 누군가 내 시집을 읽는 사람들에게 감정, 혹은 느낌이 전이가 어우러져 하나의 소통이 되고 하나의 울림이 되어 세상을 좀 더 온유하게 바꿀 수 있는 작은 동기부여라도 된다면 정말 다행한 일일 것이다. 모든 글이 다 그런 목적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자의든 타의든 글은 독자라는 개념과 수없이 많은 주관, 객관의 질문을 주고받게 되는 출판물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사회적인 의무 혹은 책임을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품을 쓸 때마다 한 편 한 편, 단어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되며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른바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시 한 편의 무게는 충분히 무거워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시는 일종의 자기 언어로 해석한 물상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살아온 풍습이나 관념이나 관습이 다르고 배움의 종류와 크기도 다르고, 관계와 관계가 만들어지고 형성되는 인연의 고리가 다를 것이다. 그런 다양함이 세상을 만들기도 하지만, 세상이라는 세계관에 세상이라는 이름을 명명하기도 하는 것이다. 필자가 늘 강조하는 것은 풍경을 보고 풍경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배경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풍경이 그곳에 존재하는 이유는 모두가 다른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에 밀려 싹이 날아와 자리 잡은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 식재 한 나무가 자라 숲이 된 것 일 수 있고, 천년의 바위가 구르고 굴러 그곳에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풍경을 구성하기 위한 이유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시인은 자기만의 언어로 풍경의 배경을 재해석해야 한다. 존재의 근원에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몇 있다. 그중 높은 자리에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묘사다. 어떤 대상이나 사물, 현상 따위를 언어로 서술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표현한다는 단어가 묘사라고 국어사전에 나온다. 하지만 국어사전의 몇 마디 말로 묘사를 전부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묘사의 범주에는 생명, 습관, 행동양식, 사는 방법, 살아가는 방법, 등등의 모든 것들이 묘사의 대상이 될 것이며 묘사라는 복제를 통해 언어로 변형된 작품들은 고유의 시선을 갖고 있다. 하나의 현상에 대하여 많은 사람이 같은 시선으로 보고, 같은 감각으로 느끼고, 같은 모습으로 각인할 수 있지만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면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눈 옆에 귀가 있을 수 있으며, 입 옆에 팔이 있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흐의 색감과 질감은 기존 화가의 작품들과 많이 다르다는 평을 받는다. 다시 생각해 보면 고흐의 질감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감수성의 깊이와 해석의 시선이 다른 것이다. 노란 태양이 아닌, 검은 태양이 존재하는 것도, 푸른 바다가 아닌 붉은 바다가 펼쳐지는 것도 모두 화자의 상상력의 결과이며 화자가 체득한 삶의 어떤 실루엣이 뒤늦게 뇌에서 튀어나와 언술로 표현되는 것이다.
주영만 시인의 시집 진찰(診察) 원고를 받고 여러 번 작품 감상을 하였다. 과연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시인의 시 세계는 어떤 inspiration을 기초로 하여 작품을 엮었는지 하며 천천히 읽다 느낀 점이 바로 묘사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주영만 시인은 내과 의사다. 사람의 장기를 들여다보며 아픔의 정도를 파악하고 치료하고 처방전을 내리는 것이다. 좀 더 생각하면 사람의 내면을 보고 치료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찰이라고 하는 행위를 통해 병의 발병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바로 시적인 묘사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물론 외과적이거나 내과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병증은 정신적인 부분도 많은 경우를 차지할 것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를 대하다 보면 무수하게 많은 임상의 조건들을 고려해야 하고 임상에서 얻어진 결과물을 다른 환자에게 대입해 새로운 치료를 하거나 예방하는 것. 그것이 시를 진찰診察하고 찰기札記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처방전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주영만 시인만의 진찰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집은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한 사내는 다른 사내에게 다가가서 가볍지는 않지만 가벼운 것처럼 그 사내의 그늘진 하루를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또 눌러 보고 두드려 보더니, 그리하여 이젠 귀를 기울여 귀를 기울여 더 이상 오지 않을 것 같은 그 사내의 가슴속을, 마음속의 그 먼바다 파도 소리를 기웃거리더니
「진찰1」일부 인용
장기가 아닌, 내부가 아닌 사내가 가슴속에 간직한 먼바다의 파도 소리를 기웃거리는 의사의 표정을 볼 수 있다. 주영만 시인의 보는 것은 한 방향의 편협이 아닌, 모든 방향의 겹눈으로 객관성을 바탕에 두고 사람을 진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청진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심장 박동과 내부 장기의 소리라는 풍경이지만 더 귀 기울이면 사내의 먼바다 파도 소리가 들릴 것이며 시인이 주목하는 것은 병렬적 사고의 추상화된 처방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이 시집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진찰診察이라는 이름의 시집이 추구하는 바, 시집을 출간하는 시인이 진찰 과정에서 본 진찰실의 사람들과, 환자, 그리고 사내와 사내가 연결하는 인과의 고리를 생각해 보는 것도 진찰이라는 시집을 읽는 즐거움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상이 아닌, 진찰이라는 특수한 공간, 환경, 환자와 의사라는 다소 상대적인 둘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삶의이야기 들이 시적 motive에 어떻게 작용하며 언술로 표현되는지에 대한 일상적이지 않은 호기심이 동하는 것도 사실이다. 시는 어디에서든 생성될 수 있는 문학작품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시작한 시라는 학문은 사람의 생장과정에서 가장 긴 문학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만큼 일반적이라는 말이다. 환언하면 생로병사와 같이 온 문학이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의사의 입장에서, 진찰실의 또 다른 이방인의 입장에서, 청진기 너머 들려오는 어떤 소리에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지, 소리의 결과값에서 어떤 처방을 생각하고 내리는지 주목해서 읽다 보면 삶의 몇 페이지쯤은 쉽게 터득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제 본격적으로 진찰 시집의 내용을 보며, 시인의 말속에 숨은 겸손의 고백을 엿보며 차곡차곡 시인의 삶의 깊이를 같이 공유해 본다.
<시인의 말>
의사라는데, 시인이라는데, 그 한 가지라도 너무 버겁고 두려웠는데,
그동안 발만 담가놓고 숨었던 것, 도망가서 숨으려고만 했었던 것은 아니었나?
나. 들여다보기
식도를 지나 가까이,
위와 십이지장 안에서 다시 가까이 가까이,
재운 잠 깨나 한 번 살펴보고
불 밝히고
우주선으로 별자리 찾아가듯
부드러운 굴곡과
밝은 굴곡과
그 길의 직유와 은유와
잊자는 말과 잊지 말자는 말과
마음 속의 마음은?
지구가 제 무게로 스스로 회전하는 것처럼
혹은 곡마단의 그네처럼
다시 위에서 세상을 한 바퀴 거꾸로 돌려 그 천장에 가까이,
비밀의 문과
한 줄기 섬광과
가까이 더 가까이
우주를 지나 새로운 우주,
그나저나 그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지?
「진찰 5 – 위 내시경」 전문 인용
위내시경을 하는 것을 문학적 관점에서 치밀하게 잘 표현한 것 같다. /불 밝히고/ 우주선으로 별자리 찾아가듯/이라는 행간에서 의학적인 부분이 문학적인 부분과 어떻게 승화되고 발전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위내시경을 하는 카메라가 지나가는 그 굴곡을 보며 잘못된 점과 좋은 점을 구별해 내는 의사의 눈길과 시인의 눈길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인생이라는, 삶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을 관조하는 관찰자의 시점과 질감은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고 채집하는 섬세한 문인의 자세를 볼 수 있다. 물론 문학을 떠나 환자를 대하는, 환자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병의 원인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전향적인 시선 역시 작품 속에 잘 나타나 있다.
지구가 제 무게로 스스로 회전하는 것처럼
혹은 곡마단의 그네처럼
다시 위에서 세상을 한 바퀴 거꾸로 돌려 그 천장에 가까이,
「진찰 5 – 위 내시경」 부분 인용
천장이라는 것에 주목해서 읽어본다. 천장은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이며 가야 할 곳이며 누구나 갈 곳이라는 높은 곳이다. 천장에 가까이 간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울 것이며 반대로 삶에 더 가까운 곳이라는 심증이 든다. 주영만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에서 우리들은 많은 천장을 갖고 산다. 하지만 그 천장이 바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기 쉽다. 시인이 바라본 지점이 그것이며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많은 환자를 대하면서 궁극의 치료 방법은 결국 환자 자신이 아닐까 싶은 결론을 도출해 본다. /지구가 제 무게로 회전하는 것처럼/이라는 말은 대단히 많은 부분은 시사한다. 지구라는 말을 운명이라는 말로 치환해 본다. 회전이라는 단어를 섭리하는 말로 치환해 본다. 운명은 제 무게로 스스로 섭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이라는 행간이 만들어진다. 치유의 능력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능력이 되는 것은 아닐지? 작품에서 시인이 시사하는 논점이 대단히 심리철학적이다. 이런 부분은 진찰 6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금연,
약속을 어기고 담배를 물었다
약속을 어긴 그는 죽었다 홀홀히 강변을 거닐던 그는 죽었다 노을 사이로 지난 가을이 흐르고 깊게 이 겨울을 신음하는 보들레르, 도처에 쌓이는 잔기침, 강물 위로 몇 개의 나무가 쓰러지고 그리고 바람이 분다 이 겨울을 감당하는 허허로운 웃음이다 동굴이 하나 둘 문(門)을 열고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하늘의 구름들, 오, 확실한 죽음
「진찰 6 」 전문 인용
약속을 어기고/라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와의 약속? 의사? 자신? 결국 선택의 몫과 책임의 몫은 같다는 말이며 이는 스스로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언급과 같은 형태를 갖는다. 역시 천장과 바닥에 대한 개념이 짙게 사유의 전반을 흐르고 있다.
어제는 한줄기 바람이 먼 저쪽의 소식이라며 하루의 습기를 걷어가고 정수리 부분이 잠시 맑아지게도 하고 그것은 또 하나의 운율(韻律)이란 것을 깨달았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차피 바람에 덧없이 흩날리는 나뭇잎 같다라고도 했지만, 애써 그렇게 말하는 동안 입 근처에서는 마른 버짐이 피었다가 스러지는 것 같더니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난 것처럼 갑자기 진료실 의자에서 일어섬과 동시에 능숙하게 하얀색 4단 지팡이를 다시 이어 곧추세우고는 어둠의 저 편으로 어둠의 길을 따라 총총거리며 되돌아갔습니다
「진찰 7 맹인盲人」 부분 인용
하얀색 4단 지팡이를 이어 곧추세우고 어둠의 길을 따라 총총거리며 되돌아가는 맹인의 뒷모습을 생각해 본다. 비록 하나의 운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지만 결국 원점은 늘 컴컴한 어둠의 길이다.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 속박을 잠시 천장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종점은 총총거리며 돌아가야 할 골목의 끝이다. /능숙하게/라는 단어가 모든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시인이 풍경을 보는 시점이 어느 관점이며 초점인지 시인이 사용하는 단어의 습관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시인의 관점에서도 냉철한 해학은 살아있다. 아마도 그것이 문장이라는 결과물에 대한 엄숙성을 더 유지하는 수단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것 같다. 냉정한 인본이라는 말이 대체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진찰 12에서 느낀 감정을 해학의 깊이가 촌철의 깊이와 비례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여든아홉 마른 풀처럼 희뿌연 할아버지가 잔뜩 굽은 허리로 지팡이 하나에 온몸이 얹힌 채 겨우겨우 진찰실에 들어오셨다
성성하게 치아는 거의 빠지고 귀마저 아득히 어두운데 해소 때문에 아주 힘겹게 몰아쉬는 할아버지의 바스락 메말라버린 가슴에 청진기를 들이대며 숨이 많이 차느냐고 있는 힘을 다해 큰소리로 여쭤보니 대뜸 간절한 눈빛으로,
- 난 요즘 자지가 안 서
「진찰 11 」 전문 인용
어쩌면 시라는 것이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삶의 변곡점이 모두 지나버린 그 시점에서조차 본능이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불행이다. 주영만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축복의 사용법, 불행의 조절법. 청진기 너머 들리는 결구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¹⁾숙시닐콜린,
동굴 속에는 소리도 없었다 부글부글 지하에서 끓어오르던 용암의 열기도 싸늘히 제압 당하고 오로지 전지전능 칠흑 같은 어둠, 자궁 속에서처럼 느낄 듯 느낄 듯 바람일까? 블랙홀처럼 조심조심 낮은 포복으로도 맥 없이 빨려 들어가 결국 혼절해버리는 저린 사랑일까?
사물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설 때,
통증이 한번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주) ¹⁾숙시닐콜린(Succinyl choline) : 전신 마취 시 마취를 유도하기 위해 투여하는 근이완제
「진찰 20 – 전신 마취 」 전문 인용
전신 마취를 혼절해버리는 저린 사랑으로 비유한 것이 재밌게 읽힌다. /사물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설 때, /통증이 한 번/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의료용 전신 마취제와 혼절해버리는 사랑은 어떤 화학적 작용을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의료인의 눈으로 보는 사랑의 의미는 전신 마취와 비견될 정도로 깊은 의식의 혼절을 갖는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았다. 이 작품은 상당히 매력적이며 독자에게 새로운 사유의 힘을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또 한 번의 변주 역시 작품의 중심을 잘 사리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사물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설 때,
통증이 한번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한 번 더 인용한 행간의 이런 비 충돌적 언어의 희화화는 비교적 짧은 작품에도 불구하고 긴 생명력을 갖게 만든다. 현대시가 추앙하는 것이 이런 점들이다. 너무 hyper 하거나 너무 난해하거나 너무 문장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적당한 선에서 독자와의 타협을 통한 자기 언어의 설득력을 갖기 위한 시인의 노력이 변주된 작품에서 또 다른 인격의 글을 읽는 느낌이 든다.
이것을 수술이라고 해야 하나? 공사(工事)라고 해야 하나?
고령에 노환에
혼자 사시는 그 할머니, 허리도 못 구부리시는 그 할머니,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시고
어쨌든 오랫동안 고단한 그 할머니,
요양보호사를 앞세우시고 휠체어에 실려오신 그 할머니,
발톱 무좀으로 괴기스럽게 커다란,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발톱들을 해결해 달라고 맨발을 부끄럽게 내미신다
발톱 무좀도 그 할머니처럼 오래되면 부끄럽고 고단했을 것이다
약도 이미 소용없고
큰 발톱 깎기로도 어림없고
발톱 줄로도 신통찮고
내가 가진 의료도구로는 가당찮고
나는 궁리 끝에
알코올 같은 소독이나 형식도 필요 없이
창고 공구통의 그 우악스러운 커다란 공사용 펜치를 들이밀었다
큰 공사한 것처럼
그 무좀 발톱들은 깨지고 튀어 부끄럽고 고단한 그 부스러기가 진료실 바닥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어지럽혀져 있고,
그 발톱 무좀은 다시 계속 부끄럽고 고단하게 자랄 것이다
그리고, 몇 개월에 한 번씩 오셔서는
이렇게 발톱 공사를 하시고
나는 그때마다 혼자 흰 가운에 공사용 펜치를 든 우악스럽고 괴기스러운 공사장 인부(人夫)가 되겠지만
어기적어기적,
그 할머니는 그때마다 부끄럽게 실눈을 뜨시고 개운한 듯 고단한 듯, 그리고 민망한 듯 웃으실 테고
「진찰 38 」 전문 인용
이전에 소개한 작품과는 다소 결이 다른 작품이다. 발톱 무좀으로 고생하는 할머니를 치료하는 과정과 할머니의 심정, 상황에 빗댄 의사의 진정성 있는 마음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발톱 무좀도 그 할머니처럼 오래되면 부끄럽고 고단했을 것이다/궁리 끝에/우악스러운 공사용 벤치를 들이밀었다/라는 행간에서 우악스러운 의사가 보이는지? 아니면 최선을 방법을 찾는 의사가 보이는지? 묻고 싶다. 그 우악한 방법으로 치료한 할머니의 웃음과 몇 달 후 다시 민망한 듯 찾아오실 할머니의 발톱과의 사람과 사람 사이 온기의 상관관계는 대단히 뜨거울 것이다. 막연하게 의사에게 갖고 있던 내가 만든 차별을 깨트리는 좋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끄트머리에 주영만 시인의 엄숙한 웃음이 배어있는 공사용 벤치의 투박함이 보일 것이며 그것은 아주 오랜 옛날, 이가 듬성듬성 빠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그윽한 표정이 생각나게 할 것이다. 시인은 그런 풍경의 배경을 읽고 시를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오래전부터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옆 사람들처럼 각자의 줄이 얼마나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들처럼 그냥 모른 체하면서 줄을 서고 있었습니다
엊저녁에는 옆방 어느 사람의 줄이 다 됐었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누워서 바람에 벗은 몸을 드러내는 12월의 나무를 흠모하였습니다
창밖에는 희끗희끗 몇 개의 눈발이 날리기도 하더니만
날마다 하루하루의 더딘 세월도 그럭저럭 흘러가기도 하더니만
지금은 몸도 마음도 메마르고 삭고 스러져 이제 대부분의 움직임을 없애는 데까지는 성공하였습니다
그 줄에 서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무를 닮아, 나무를 닮아 아주 오래 묵은 12월의 한 나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진찰 54 - 요양원1 」 전문 인용
요양원에 갈 나이가 되어가는지 주변 이웃이나 가족들의 요양원 입소 소식이 하나둘 들려온다. 때가 되면 부고장과 요양원 알림 문자가 늘어난다는데, 돌은커녕 결혼식 소식조차 먼 옛날이야기가 된 지금, 어쩌면 필자도 줄을 서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의 갠지스 강변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고 한다. 요양원도 아니고 요양병원도 아니고, 다만, 며칠 후 있을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집. 그곳엔 암울한 분위기만 가득할까? 그곳엔 모든 것을 내려놓은 허깨비들만 가득할까? 아니다. 다큐를 통해 본 그들의 삶은 살아온 대다수의 나날과 별다르지 않다. 종착역에 도착하기 조금 전 부산하게 짐을 챙기는 사람만 없을 뿐, 먼저 내리고자 하는 혼잡함만 없을 뿐,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만 조용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누구의 줄이 다 되었든, 누구의 줄이 먼저 끊어진들, 세월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며 계절은 나와 관계없이 왔다 가는 것이며, 주영만 시인의 말처럼 아주 천천히 나무를 닮아가는 것이다. 아주 오래 묵은 나무 한 그루가 되어 마른 잎을 제 몸에서 떨구는 것이다. 요양원은 요양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요양원은 요양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중요한 것은 (요양원)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요양원이라는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각이다. 줄 서는 법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치기하면 고마운 줄이지만 새치기가 필요 없는 줄이 내 앞에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주영만 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제 무게로 회전하고 있는 지구. 그 안에 펼쳐진 섭리의 세계는 의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치유할 방법이 없다. 다만, 순응하고 인정하고 승복하고 내 안에서 내가 받아들일 때 비로소 치유의 완성이 아닐까?
필자가 읽은 주영만 시인의 (진찰)이라는 시집에서 느낀 것은 삶의 단면이 아닌 다면이다. 어느 한 층의 잘라진 왜곡이 아니라 모든 면을 총괄하는 삶의 필연적인 원리다. 시는 관조를 바탕으로 성찰을 꾸미는 행위이다. 이른바 서평에서 문학의 가치, 깊이, 무게를 따지는 것은 무가치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신호체계를 만드는 일이다. 주영만 네 번째 시집, 『진찰(診察)』이 그런 시집이다. 진찰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에 대한 관찰자적 시점과 ‘진찰’이라는 시각의 두 가지 관점에서 출발하여 인본적인 감수성으로 매듭짓는 것이 이 작품집의 특징인 것이다.
다. 맺으며
시는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지극히 객관적이다. 시는 글자로 표현된 문학이면서도 감정이 묻어 나오는 베와 같다. 시는 규정과 운율과 구성과 방식을 가르고 나누면서도 전혀 나누지 않는 독특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인의 눈이다.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보려 애쓰는지, 무엇을 보고 무엇이라 말하는지, 글의 온도는 어떠한지, 그것이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이정표가 될 수 있는지, 그 모든 방법과 해설과 질문과 답에 대한 것은 독자의 몫이다. 시인은 자신이 본 것을 자신의 눈으로 제시할 뿐이다. 주영만의 시는 명쾌하지만 그 온도가 매우 뜨겁다. 아마, 시인 자신의 숨결이 그렇게 따듯할 것이다. 이 진찰(診察)이라는 시집에서 삶의 온도가 뜨거워지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시 두 편을 인용하며 서평을 맺는다.
되새김하듯 쉴 새 없이 계속 웅얼거리는, 머리카락처럼 하얗게 세고 그 빛이 바래서 틀니 밖으로 새어 나온, 먼 옛날의 기억(記憶)들처럼 알 듯 모를 듯 갑자기 사방으로 두서없이 터져 나온,
말의 꽃잎들,
주름이 깊게 패인 예쁜 눈썹의 낮달,
주) ¹⁾예쁜 치매(癡呆) : 인지기능이 떨어지더라도 감정 조절이 잘 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치매
「진찰 57 – 예쁜 치매癡呆 」 전문 인용
- 혼자서 가네
그저 메말라가네 당신의 오랜 병상(病床)에 스며든 어둠의 알갱이처럼, 뒤뜰에서 소리 없이 낮게 이는 바람처럼, 시간마저도 길을 잃어버린 얼굴처럼, 놓을 듯 말 듯 희미하고 가늘게 멀어져 가는 숨결처럼, 사물처럼,
잊고 있었던 기억들조차 낡은 베갯잇에 무늬 지어진 幸福이란 글씨 위에 오래된 눈물자국처럼 떡진 채 찌들어 있고, 혹은 메마르고 메말라서 한 줌 먼지가 되어 날아갈 때까지 가벼워지면 이제 이 세상으로 처음 나올 때의 안간힘을 다해 빠져나왔던 그 좁은 ¹⁾구멍 속으로, 그 좁은 구멍 속으로 당신은 다시 들어가네
그 좁은 구멍 속의 칠흑 같은 어둠, 그리고 무중력(無重力)!
마침내 형식도 내용도 소리도 없이 먼지처럼 둥둥 떠다니는 바짝 마른 당신의 웃음을 보여다오
주) ¹⁾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도 '구멍'을 묘사한 바 있음
「진찰 61 – 혼자서 가네」 전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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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주영만
1957년 대전 출생.
1991년 『문학사상』 시부문 신인상.
시집으로 『노랑나비, 베란다 창틀에 앉다』(2001), 『물토란이 자라는 동안』(2021), 『그리고 아무 일도 아니다』(2024)가 있다.
한국의사시인회 회원. 현재 내과 의사로 경기도 광명에서 우리내과의원 개원 중.
여기, 독특한 방식의 진찰診察이 있다. 의학과 과학의 경계를 허물고 그 자리에 인간사를 가미하여 새롭게 선보인 진료 레시피다. “열이나 안색, 혹은 혈압 같은 것들을” 가만가만 살펴보다가 “그늘진 하루를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또 눌러 보고 두드려” 본다. 시진詩診이자 문진文診이다.
“바스락 메말라 버린 가슴에 청진기를 들이대”는 전통적 진찰법으로 환자의 내면까지 살피기엔 역부족이다. 인간 냄새 물씬 풍기는 의사가 굴곡진 환자의 몸과 마음을 조곤조곤 어루만진다면 어떨까 생각했는데, 황금 레시피를 선사한다. 간혹 “시원한 답을 못 얻으셨다고 화만 잔뜩 내고” 가버린 환자도 곰곰이 그의 비법을 따져 보고는 “며칠 후에 또 오신다.”
주영만 시인은 의사와 환자와의 소중한 감정, 혹은 관계 등을 아름답고 처연하게 풀어낸다. 고통 중에도 미소 짓게 하는 마법의 시어들이 68개의 ‘진찰’에 촘촘히 박혀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선보인 적 없는 의사 시인의 모범 텍스트다.
― 김연종(의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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