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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詩를 읽다/남궁금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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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3회 작성일 25-09-09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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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푸른 들녘의 시놉시스 synopsis




-남궁금순 첫 번째 시집『밭에서 詩를 읽다』를 읽고



 


글/ 김부회 시인, 문학평론가



가. 들어가며



시집 한 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을 전부 알 수는 없다. 개략의 인생행로를 통하여 미루어 짐작하기만 할 뿐 그 삶에 대하여 누구도 재단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시놉시스다. 남궁금순 시인은 80년 넘게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반추하고 성찰하고 되돌아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꾸준하게 시와 산문을 쓰면서 과거를 반성하고 현재를 갈무리하고 미래를 알차게 만들기를 꿈꾸는, 어떤 면에서 보면 진정한 시인의 자세를 갖춘 참 시인 중의 한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옆에서, 혹은 뒤에서, 곁에서 지켜보면서 필자가 느낀 감정은 늘 같은 감정이다. 문제를 던지고 답을 찾고 하는 과정을 통해 지난한 인생의 풍경을 자신에게 대입하여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여류시인이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 듯하다.


시는 약속의 언어다. 동시에 시는 주문의 언어다. 우리는 시를 통해 자신에게 끝없는 약속을 하고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시를 통해 미래를 만들 주문을 외운다. 비록 타인에게는 통하지 않을 방언과 같은 주문이지만 자신에게는 넉넉한 삶의 토양을 만드는 언어가 되는 것이다. 남궁금순 시인의 시에는 수사적 기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진실을 진실에 더 가깝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아마도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조리법과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아주 조금의 양념을 치듯, 약간의 은유와 비유 함축이라는 시적 요소를 추가하여 삶을 관조하는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침착한 시선이라고 느끼게 한다. 그 시선에서 독자가 배울 것은 삶은 치장하거나 화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물을 어떤 시선으로 보는가 하는 온당한 삶의 방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남궁금순의 시집에서 젊은 언어를 찾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늙은 언어하고 할 수도 없다. 굳이 칭한다면 진실의 언어라고 하면 맞을 듯하다. 들판에 나가 일을 하면서, 저잣거리에 나가 장사를 하면서, 시인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 힘든 시간의 와중에도 불구하고 글로 적어 내려간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숨 가쁜 삶의 시간 속에서 시에 대한 열망 하나로 한국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하고, 그 힘든 삶의 시간을 쪼개 문예대학을 수강하고 비록 잠시 졸지언정 꼼꼼하게 출석하여 의지를 달군다는 것은 범인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는 노력이 산물이다. 이 시집의 제목처럼 『밭에서 詩를 읽다』는 제호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77편의 시로 남궁금순 시인의 전부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시인의 생을 엿봄으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진정성)이라는 단어다. 살면서 가장 놓치기 쉬운 단어이며 가장 실수할 수 있는 단어이며 가장 쉬운 단어이면서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단어가 진정성이다. 진중하고 솔직한 시선은 삶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며 조건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함으로 인해 사람과 사람, 인간과 인간이라는 관계가 무너지고 소멸되고 비틀어짐은 주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솔직한 사람에겐 솔직해야 하는 것이 관성의 법칙이라면 너무나 많은 사회적 관계들이 그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거나 반대로 행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남궁금순 시인의 시집을 읽어보면 자신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밭에서 詩를 읽다』라는 시집의 매력이며 장점이다. 시집 한 권에서 거창한 삶의 철학을 발견하거나 대단한 인생의 공식을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문득 가슴이 따듯해지거나, 왈칵 눈물이 나거나, 먼저 생을 마감한 누군가의 등이 기억난다면 성공한 것이다.


시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는 지식을 자랑하거나 문장의 기술을 뽐내는 것이 아니다. 시는 적나라한 내 삶을 독자와 공감하며 소통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집의 조건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가감이나 덧칠의 방식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얻어지고 보이는 생명의 조건이나 경외, 삶의 풍경과 배경에 대하여 시인 자신만의 눈으로 얻은 것을 나누는 일이다. 시인의 말처럼 밭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은 밭에서 기른 상추를 이웃과 나누는 일과 같은 것이다. 스스로 체득해서 얻은 결과물을 공감과 소통이라는 시의 장르적 특성을 반영해 독자와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글의 목적성은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해에도 많은 시집들이 출간되며 시집에 대한 서평 역시 홍수를 이룬다. 대부분의 서평이 시의 이론에 대입하여 시를 분석하거나 해체하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 것도 좋은 분석이며 서평이며 평론임에 분명하지만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시인에 대한 이해다. 어떤 삶을 살아왔고 그 삶을 영위한 삶의 자세와 그것이 어떤 식으로 시로 승화되었는지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바른 서평 중의 하나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의 지식을 드러내며 이를 위주로 작품을 문장화하여 소개하는 것도 좋지만 시 작품 하나하나의 면면이 간직한 삶의 무게와 깊이, 진정성과 어울림을 동시에 반영하여 작품의 본질을 반영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추구하는 서평의 바람직한 방향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시의 본질은 기교가 아닌 진정성이라는 것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진정성과 관련하여 필자의 졸저 시는 물이다라는 평론집에서 한 부분을 인용해 본다


보통의 독자들이 선호하는 시의 경향에 대한 소고小考


시의 대중성 혹은 대중화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두어야 할 가치 기준은 관점에 따라 많이 다를 것이다. 일반적인 서정론에 입각한 서정시, 생활에서 체득한 산물 생활시, 역사에서 씨앗을 구한 역사 시 등등의 개인적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통칭해서 공통분모를 구해 본다면 한마디로 요약,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쉬운 시”라는 것이다. 쉽다는 말은 결코 쉽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쉬운 시에서 종종 발견하곤 한다.



시가 함의하는 의미의 내포가 큰 시, 쉬운 시가 쉽지 않다는 말의 반증이라는 것이다. 쉬운 시라는 것은 눈에서 쉽게 보이거나 멜랑꼬리 Melanchory 한 문장 일부가 가슴에 와 닿는 순간 느끼는 감정의 전이 내지 변이와는 별개의 의미라는 생각이다. 일상어로 쓰인 짧은 한 문장이라도 삶에서 우려낸 진정한 성찰이 담겨 있어야 하며 시의 진정성이 두고두고 반추되며 반추가 다시 나름의 의미로 재해석되어 미래의 삶을 지향하는 지향점이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며, 그런 시에서는 오래 우린 시향이 가득 넘칠 것이다.


필자는 지속해서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주장해왔다. 보통의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시가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으며 감동이 없기에 시적 질감이나 시적 의미에 대해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기에 잠시 눈요기에 불과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위험한 논리는 배제하고 싶다. 깊은 성찰과 참회의 시간이 녹여지고 우려낸 작품이지만 아쉽게도 읽는 독자의 혜안이 부족하여 글의 배후를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좋은 작품도 대단히 많다. 시인을 위한, 시인만이 읽는 시도 많다. 그런저런 연유로 소제목을 이렇게 잡아보았다. (중략)


『김부회 평론집 시는 물이다 중 보통의 독자들이 선호하는 시의 경향에 대한 소고小考』일부 인용


최근에 남궁금순 시인은 인생의 반려자를 황망 중에 먼저 보냈다. 이제 혼자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을 다잡기 위해 시집을 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 그간 꾸준하게 문학상에 출품하고 여러 곳에서 수상을 한 기록을 본다. 그 연세에 도전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아름답고 지혜로운 일이다. 특별히 제4회 김포문학 신인상, 무궁화 문학상, 통일 문예제전, 한국 예술인 복지 재단 창작지원금을 2회에 걸쳐 수혜 받았다. 중요한 것은 수상한 기록이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그 마음이 존경스럽다. 시인이 얻은 것은 수상의 기쁨 이전에 자신에 대한 극복과 그로 인한 삶의 재충전, 보람 등등 일 것이다.


이쯤에서 시인의 말을 인용해 본다. 짧은 문장 속에 시인의 시에 대한 궤적이 잘 나타나 있다.



작가의 말


비로소 해냈다는 후련함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쉽지 않은 나날들 허투루 하지 않고

한 땀 한 땀 엮어놓은

나의 詩 앞에

촛불을 켜본다.


해냈다는 말, 후련함이라는 말, 허투루 하지 않고, 한 땀 한 땀이라는 단어에 집중해서 생각해 본다. 밭일, 논일, 장터의 일, 생활을 하면서 만학의 꿈을 채우고 비로소 첫 시집을 내는 지금, 어쩌면 시인의 시놉시스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완결은 아주 먼 미래의 일이다. 청춘의 시대, 그 꿈 많던 시절의 여류문학도로 되돌아가 우렁우렁 시를 키우는 시인을 조망하고 싶다. 상춧잎과 같은 시인의 작품을, 초록의 작품들을 읽으며 저 들녘의 푸르름을 닮고 싶다. 말끔하게 헹궈낸 내 마음의 밭을 갈고 파종하고 싶다. 내년을 위해.




나. 들여다보기


나무에게는 그늘이 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저 생긴 대로의 그늘을 드리우고 산다


꽃에게도 그늘이 있다

꽃그늘도 그늘은 그늘일 뿐이다

멀리 보아서는 모르는 언제나 푸르고

언제나 예쁠 것 같은 그들에게 드리워진 그늘


그늘이 있다는 건

이 세상에 그들이 존재해 있다는 거다

어쩌면 그늘이 있어

더 싱그럽고 더 아름다워 보이는지 모를 일


잠시 그늘에 앉아 쉬었다 가려는데

나무가 말을 건넨다 아프냐고 화가 나느냐고

속내를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무가 속엣 말을 한다

나도 때론 아프다고 슬프다고

미친 바람이 불어와 곁가지도 찢어놓고

눈사태로 우듬지까지 부러뜨려 아프다고


그래도 가끔은 알맞은 햇볕과 알맞은 비가 내려와 주어

살랑거리며 춤을 추며 사는 거라고

더 좋은 건 오늘 같은 날 그늘이 있어

아픈 당신에게 땀도 식혀주고

마음도 달래줄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


『그늘』 전문 인용


여름이면 누구나 그늘을 찾는다. 뙤약볕 아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그늘에 맡기면 잠이 솔솔 온다. 시인은 나무 그늘을 이야기하면서 시인의 삶 속에서 그늘이 되어준 누군가를 기억하거나 회상하며 다시 자신이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확장한다. 하지만 그늘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하는 속 깊은 배려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나무가 속에 말을 한다

나도 때론 아프다고 슬프다고

미친 바람이 불어와 곁가지도 찢어놓고

눈사태로 우듬지까지 부러뜨려 아프다고


『그늘』 일부 인용


그늘이 되어준다는 것은 더 큰 희생을 요구한다. 그늘이 되기까지 그늘을 만들기 위한 나무의 몸은 아파도 아프다 말하지 못하고, 슬퍼도 슬프다 못하고, 우듬지까지 부러져도 말을 못 한다. 다만, 그는 하나의 그늘이 되어주기 위해 묵묵하게 자신을 공양하고 있는 것이다. 그늘이라는 작은 현상 하나에도 많은 의미와 삶의 자세가 숨어 있다는 것을 시인은 발견한다. 그늘 작품의 본문 중 / 더 좋은 건 오늘 같은 날 그늘이 있어/아픈 당신에게 땀도 식혀주고

마음도 달래줄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라고 말하는 것이다. 삶에 있어서 누군가의 그늘이 된다는 것은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모든 불편과 힘듦을 감내하고 땀도 식혀주고 마음도 달래주는 역할, 그것도 오랜 시간 그늘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일종의 수양이며 수행이며 큰 사랑의 실천이다. 시인의 말처럼 / 저 생긴 대로의 그늘을 드리우며 산다/는 것을 우리는 과연 얼마나 그늘을 만들며 살고 있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풍경을 보되 풍경 너머의 배경을 읽는 일은 시인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밭을 매다 개미집을 건드렸다

왜 남의 집을 파헤치느냐

떼거리로 나와 덤빈다


잘 보이지도 않는 까만 점 같은 것들

한 놈은 소맷자락 속으로

또 한 놈은 호미 자루를 쥐고 있는 내 손등으로 기어올라 손등을

또 다른 놈은 바짓가랑이 속으로 들어와 허벅지를 문다


나중엔 죄다 나와

닥치는 대로 문다

개미에게 홀릴세라

몇 놈을 죽이다 도망쳤다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니

더러는 죽은 친구를 물고 가고

더러는 드러난 새끼 알들을 물고 간다

풍비박산이 된 집에서

개미들의 움직임이 다급하다

작은 몸뚱이에 들어있는 큰 생각들


나는 강자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는데

내려다보고 있던 해가

내 소중한 하루를 물고 간다


『개미』 전문 인용


밭에서 일하다 개미 군집을 만났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먹이 활동을 하는 개미. 일하다 보면 온통 개미에게 물린 자국투성이가 된다. 그 작은 생명들에게서도 시인은 삶의 철학을 발견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보니

더러는 죽은 친구를 물고가고

더러는 드러난 새끼 알들을 물고 간다

풍비박산이 된 집에서

개미들의 움직임이 다급하다

작은 몸뚱이에 들어있는 큰 생각들


『개미』 일부 인용


개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와중에 몸을 깨무는 것은 일종의 삶의 방식이다. 그저 멀리서 보면 개미들의 움직일 뿐인 것에서 시인의 말처럼 그 작은 몸뚱이에 들어있는 큰 생각을 보게 된다. 그들도 그들의 동료가 있고, 생로병사가 있으며, 새끼 알들이 있으며 종족 보존 본능과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비록 시인은 잠시 개미 앞에서 강자가 되어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보고 있지만 다른 자연의 위대함 앞에 시인 역시 하나의 개미에 블과 할 수 있다는 겸손한 생각이 시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내 소중한 하루를 물고 간다/는 결구에서 시인이 보는 생명과 생명을 동일시하는 시선은 매우 진중하며 성찰적이다. 이런 시선들을 관찰자적 시점으로 볼 때 시적 매력을 환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시는 어렵지 않아야 한다. 쉬운 것을 어렵게 만드는 문장이 아니다. 어려운 것을 쉽게 만드는 문장이다. 하지만 시 속의 생각과 사유는 깊고 깊어야 하며 부드럽고 따듯한 박애적 온유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곳의 기본적인 소양이기 때문에 시인의 문장에 공감하고 나를 반추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과 동떨어진 이야기가 아닌, 동화된 이야기는 가장 큰 감동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고추밭에 갔다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


심어놓고

한 번쯤 김을 매 주고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못 갔더니

고추밭은 온통 풀밭

메싹줄기에 주리 틀려

겨우 얼굴만 내놓고 있는 고춧대


내가 호미를 들고 들어서자

총알같이 쏟아낸다

이제 오면 어떡해요

심어놓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아요?


옆집 고추밭을 바라보니

이들이들한 고추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꽃맺이 몇 개 달고 있는 우리 고추나무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


게으른 내 시 쓰기 같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메싹줄기부터 죄다 풀어주었다

바닥을 덮고 있는 쇠비름, 개망초도

모조리 뽑아 밭두렁으로 내팽개쳤다


저녁엔 비가 온다니

이제라도 기 좀 펴고 살아보라

바닥에 비닐도 씌워주었다

염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짐을 덜었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은 가벼웠다

빨간 고추 기대해 봐도 될까


『고추밭에서』 전문 인용


고추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안다. 그 작은 밭에 촘촘하게 달려 있는 고추 따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필자 역시 어린 시절에 외탁을 하여 할아버지와 고추밭에 자주 갔다. 고추를 따기는커녕 금세 허리 아프고 눈도 아프고 하여 냇가로 줄달음질만 하던 시절이었다. 시인은 고추 농사를 하며 타인의 밭에 매달려 있는 고추를 보고 내 밭의 고추가 덜 자라거나 많이 맺지 못한 고추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고추밭은 왜 이렇게 잡초들이 많은지 잡초를 뽑는 것이 고추 수확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저 포기하면 될 수도 있는 일인데 그것도 생명이라고 시들시들한 고추나무에게 미안하다고 시인은 말한다. 다른 고추들은 김도 매고 비료도 주고 하여 건강한데 내 밭의 고추는 내 게으름과 비례하여 비실비실하다고 자책한다. 첫 연의 말처럼 /고추밭에 갔다 욕만 실컷 얻어먹었다/는 생명에 대한 동일시화한 시각이다. 흔한 고추조차 시인에게는 자식과 같은 마음을 품었으리라. 그것이 시인이 삶을 대하는 자세다. 흔한 고추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미의 마음으로 고추를 바라보는 마음 저 깊은 곳에 고추와 나의 시라는 성찰과 반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게으른 내 시 쓰기와 고추밭의 시들시들 병약한 고추들. 그것이 시가 되었든 고추가 되었든 보살핌과 관심이 없다면 무엇이든 시들어 버릴 것이다. 그런 간난의 시간들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되었으며 가족이 되었으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관계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남궁금순 시인이 만학의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을 졸업한 것이 이해가 되었다.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고 만나면서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주변과 소통하기 위하여 시인의 길을 선택했으며 선택한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는 그 생활 자체가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잣거리에 많은 시인들이 이른바 시인 입네 하며 거들먹거린다. 하지만 이처럼 생활과 연계되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쳐 공부하는 시인이 몇이나 될지 생각해 볼 문제다. 아마 내년 여름엔 시인이 기대하는 빨간 고추가 고추나무에 주렁주렁 열릴 것이다. 남궁금순 시인의 첫 시집 『밭에서 詩를 읽다』라는 붉은 고추가 시인을 물끄러미 고마워하며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들녘에 푸른 시놉시스는 이렇게 한 페이지를 덧대고 있다.



나는 부자다

만 평 정원을 한눈에 넣고 사는

값으로 치면 아마 몇백억?


봄이면 게서

쑥 뜯어다 쑥개떡

씀바귀로는 고들빼기김치

이들이들하게 자란 담배 나물로는 묵나물

그래도 남으면 여름내 무더기로 피는

하얀 꽃 보는 재미로 산다


가을이면 해바라기와 코스모스도 가득 심어

해바라기 코스모스 꽃에 취해 산다

겨울엔 눈꽃도 가득 피어

내 눈 엄청 따듯해진다

내가 이리 호강하며 살게 된 건

조카딸이 다녀간 뒤부터다


2층에서 밖을 내나 보던 조카딸

외숙모! 언제 저렇게 넓은 땅 장만하셨어요?

응?

갸웃하다 알았다

마음 하나 바꾸니 금세 부자가 되는 걸


난 그렇게 부자로 살 거다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까지


『만 평 정원』 전문 인용


많은 사람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산다. 그러려니 치부하면서 살면 마음도 편한데 자꾸 위를 보고 비교하며 산다. 이만큼 올라서면 된 듯도 싶은데 올라선 자리에서 한 번 더 위를 보면 층층의 계단이 보인다. 과연 삶에서 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일까? 몇백억의 돈? 첨단 건물에 완벽한 보안 시스템을 갖춘 비벌리힐스의 대 저택?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홀로 즐기는 수영장? 미끄러질 듯한 세단에 몸을 맡기고 드라이브하는 것? 뭐 그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일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어느 기준선 하나에 머물러 있지 않다. 가치 기준을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의 의미와 크기, 깊이는 달라지는 것이 사람이다. 백만 평의 정원을 내 소유로 갖고 있어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니다. 집안에 금괴를 몇 톤을 쌓아두어도 금괴는 금괴일 뿐이다. 산다는 것은 모두 일체유심조의 범위 내의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마음 하나 바꾸니 금세 부자가 되는 걸


시인은 이 위대한 이론을 금세 깨우쳤다. 마음 하나다. 마음 하나 바꾸면 저 창밖의 모든 들이 내 것이며 산천이 내 것이며 감히 측량할 수 없는 하늘이 내 것이며 세상 모든 것이 내 것이 된다. 참 쉬운 말이다. 마음 하나 바꾸니 금세 부자가 되는 것. 세상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부자가 된 기분을 시인은 만끽하고 산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비록 타인의 잣대로 재단하여 착시 혹은 착각이라는 말로 매도할지라도 어차피 인생은 자기만족이다. 눈뜨면 펼쳐지는 푸른 들녘, 서산을 곱게 물들이며 지는 저물녘, 따듯한 햇살, 편안하고 부드러운 바람, 여름날의 빗줄기, 풀벌레들의 오케스트라 연주, 색색으로 피어나는 꽃 무더기.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중 가장 행복한 것은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다. 어제의 삶에 만족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여전히 부자인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때, 어쩌면 그것이 행복의 조건이며 마침표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가 있기에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기에 내일이 있는 법이다. 어제가 행복하기에 오늘이 행복한 것이며 오늘이 행복하기에 내일이 행복할 것이다. 이런 단순한 이치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사상과 관념, 종교적 가치와 가치의 충돌, 영토를 확장하고자 벌이는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사람답게 사는 길은 마음 하나 바꾸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세상은 없어지고 눈을 뜨면 다시 생기는 것이 이치다. 남궁금순 시인의 작품에서 내가 미처 깨우치지 못한 세상을 배운다. 그 점이 이 시집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시인의 마음은 여러 작품에서 동일하게 표방하고 있는 메시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몇 작품의 부분들을 인용해 본다.


때론

속없이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이네

속 있이 산다는 건 괴로운 일이지

속을 채워 살면 버겁지 않은가


『바람 인형』 부분 인용


길이 그렇게 많은 걸

찾아 나서면 얼마든지 있는데 없다고만 했다

어느새 해는 기울고 있다

나는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걸까

걷고 있는 내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길 속에도 길이 있다』 부분 인용


오늘도 난 걸을 수 있어서

온종일 좋잖아

잃어버린 것보다

가진 게 더 많으니 좋은 거잖아


오늘 아침에도 해가 떠오르고 있잖아


『하루하루를 그렇게』 부분 인용


생머리 아줌마

새까만 머리칼, 까만 고무줄로 묶었다

파마 끼는 하나도 없다

”참 예쁘세요, 얼굴도 젊고“


칭찬 한마디에 얼굴빛이 환하다


기분 좋아진 아줌마

차마 뒤가 켕기는지

“젊기는요, 저 염색했어요”

그렇게 말해놓고 멋쩍게 웃는다


나는 속고 나서 웃고

그녀는 속여 놓고 웃고


『속아 주다』 전문 인용


다. 맺으며


위 인용한 작품들의 공통적으로 시인이 던지는 혹은 보여주는 메시지는 삶이다. 체험 삶의 현장이며 바른 이치다. 포장하거나 짙은 화장을 한 것이 아닌 진솔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참모습일 것이다. /나는 속고 나서 웃고/그녀는 속여 놓고 웃고/ 이런 모습이야말로 사람 냄새나는 삶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인이 보는 세상은 자신에 대한 부단 없는 노력과 희생 더불어 유쾌한 방정식이 존재한다. 그 방정식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전혀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속고 나서 웃고 와 속여 놓고 웃고라는 방정식인 것이다. 세상은 온통 신뢰 부족과 다툼으로 인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무한 경쟁의 사회 속에서 좀 더 사람과 더불어 사는 지혜가 시인의 시집에서 쏟아져 나온다. 위대한 성현의 말씀이 아닌, 바이블의 말씀이 아닌, 살면서 체득한 현명한 지혜가 가장 빛나는 유산이 되는 것이다. 경륜은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부한다고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졸업장이 아닌 것이다. 밭을 갈면서, 파종을 하면서, 한여름 땡볕에 몸을 태우며 김을 매면서 한 해 두 해 쌓이는 수행과 같은 것이다. 시인의 시집엔 교언영색이나 시적 질감에 대한 과도한 덧칠이 없다. 장독대에 놓여 있는 수많은 장독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투박한 질감의 장독, 그 속에서 간장과 된장이 익어가고 오래된 씨간장이 영롱한 빛을 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눈으로 스치면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 속을 들여다보면 풍경을 만들게 된 배경이 보이는 것이다. 시집 한 권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고민하지 말아야 한다. 그저 시인의 눈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터득하게 되는 진리가 있다. 우린 그것을 울림과 소통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몇 달 전 남궁금순 시인은 부군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많이 힘든 시간이 지나가는 중이다. 50여 년 넘게 살아온 이별, 그 후의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그동안 묵혀 놓은 시집을 세상에 선보이는 중이다. 시인에게도, 시집을 읽는 독자인 우리에게도 위안과 안식과 위로를 주는 시집으로 자리매김하면 좋을 듯하다. 몇 편의 작품을 소개하면서 필자 역시 많은 감동을 받았다. 시적 진술이나 질감, 서정적인 시의 모습에 내가 갖고 있던 시에 대한 편견을 과감하게 버리고 싶다.


『밭에서 詩를 읽다』라는 시집이 널리 사랑받길 원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좋다. 최소한 남궁금순 시인에게는 삶의 소중한 기록이며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한 다부진 자기 각고로 각인되면 좋겠다. 시는 내가 먼저 감동해야 울림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시집 속에 담긴 시인의 모습에서 진한 사람 냄새가 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여생을 쏟아 좋은 시를 많이 지어 모든 사람들에게 더 깊은 감동을 주는 시인으로 오래 남길 바라며 수록된 작품 중 한 편을 선별하여 소개한다. 충분히 시인의 자질을 볼 수 있는 작품이며 시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2025년 여름에 출간하는 시집 『밭에서 詩를 읽다』가 이 더위에 정갈하고 맑은 샘물처럼 생명수가 되길 바라며 맺는다.





밭에서 소설을 읽다



한 여자

밭에 나와 소설을 쓴다


잘 나간다 싶던 남편 사업한다고 살림 다 날리고, 사십 대 중반 겨우 넘긴 어느 날 잠자다 심장마비로 가버렸다는

기(起)를 쓴다


기막혀 어린 것들과 함께 죽자 했다, 눈치 빠른 아이들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이슬 맺히는 걸 보고 차마 죽지 못했다고. 젊은 것이 혼자 사는 게 아깝다며 새사람 만나 보라는 이도 있었지만, 억누른 채 새끼들 눈에 밟혀 안 해 본 일 없이 살았다는

승(承)도 쓴다


한창 불붙을 때 꺼버려, 가슴속이 숯검댕이 됐다는 아낙


잘 자라 주어 걱정 없을 줄 알았던 아들마저 사업하다 망해, 혼자 변두리로 흘러들어 사글세 빌라에 산다는

전(轉)을 쓸 즈음엔 가슴을 다 열어 보인다


갈피 못 잡아 하다, 남의 땅 빈자리 하나 얻어 심은 푸성귀가

나풀대며 야시랑 거리는 재미, 자식들 오면 고것들 들려 보내주는 재미의

결(結)까지 마저 쓰느라 서러워할 틈이 없다는 여자


허구한 날 왜 밭에 나와 삽질, 호미질하느라 힘을 뺄까 하다

나중에야 곰삭은 소설을 엮느라 그런다는 걸 알았다


언젠가 두툼하게 엮을 거라는 소설 몇 쪽 분량을 읽다 하도 가엾어 말벗이 돼 주었다. 가뭄에도 물을 날라다 주어 잘 키운 야들야들한 상추, 쑥갓이 어설픈 문장을 고치고 다듬어 쓴 그녀의, 자전적 소설만큼이나 맛깔나 보인다


나는 가끔 심심해지면 밭으로 소설을 읽으러 나간다

얼마나 힘들었냐고 추임새도 넣어줄 겸


밭은 언제나, 그녀의 푸른 원고지다


『밭에서 소설을 읽다』 전문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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