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꽃으로 피어나는 손 – 임영자 첫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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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꽃으로
피어나는 손 – 임영자 첫 시집

『서평』남도서정을 모태로 한 창조적 표상의 세계
김성신(시인, 문학박사)
1. 세계와 삶 속에서 달려 나온 이미지
우리는 시를 읽고 쓰며 다양한 생각과 삶의 지혜를 주고받는다. 시는 직간접 체험을 통한 내면세계와 외연의 확충, 감성의 이입, 상상과 전율, 본질과 영원성을 추구하며 그 결실을 공유하는 공동의 창구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사회적 약속기호인‘언어’의 특성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히 수용함에 있어서 보다 실제적이고 감각적이며 간결한 언어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존재의 현상를 의미화하고 그 가치를 증대하는 데 기여하는 언어, 즉 사유의 질적 향상과 사회적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시적 공통 언어’를 끊임없이 개발해 나간다.
임영자는 첫 작품집인 이번 시집에서 내면세계의 자장과 확장을 통해 시공간의 유기성을 확보하는 한편, 이를 분출하는 이미지와 연결해 독자적 시세계를 구축한다. 그 내밀한 '눈'은 시적 상상력을 통해 실존적 자각을 현재화하는데, 이때 표상되는 이미지는 온전한 자신만의 창조물로, 언어의 폭과 깊이를 증대하는 기폭제다.
바람도 얼굴이 바뀌는 시대
등이 드러난 마른 증언을 듣는다
저 눈은 누가 우물처럼 파놓은 것일까
눈썹 한쪽 옹이진 고요
주름 곳곳 각진 수심이 깊다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나를 다녀온 내가 묻는 바깥이 사라진 질문들
누군가 팔을 잡아당겼다
조각도에 함께 깎인 이름을 조용히 되뇌었다
모서리 상처에 입술만 깜빡이는 인형
아무렇게나 자란 이름을 잘라내느라
다문 입술이 흩어지지 않도록 손끝에 힘을 주었다
삐걱거릴 때마다 나는 나를 바꿔 입어야 해요
겹겹 바닥을 뒹군다, 벗겨도 벗겨도
알맹이면서 껍질인 또 하나의 당신
공원 모퉁이에 버려진 기억들이 어둠에 묻힐 때
파랗게 수집되는 기분
곧 다시 머리에 싹이 틀 것이다
-「마트료시카」 전문
프레데릭 슐레겔은 시적 이미지는 “단숨에 이루어진 창조”라고 했다. 이를 상상과 연계할 경우, 상상을 통한 이미지의 확장은 ‘꿈’과 ‘사유’라는 이중의 중심축을 무기로 하며, 그 파장은 정신의 모든 영역에 관여하는 등식이 성립된다.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 상상력의 위력을 빌려 이미지에 침투할 경우, 그 확장력은 회의와 관념의 울타리를 뛰어넘는다. 이와 같은 상상의 파동은 “바람도 얼굴이 바뀌는 시대/등이 드러난 마른 증언을 듣는다” 에서 절정에 이른다. 변화무쌍한 시대, 누구도 알 수 없는 자신의 실체를 스스로 증명해 보겠다는 강고한 의지가 그 핵심이기 때문이다.
꿈과 현실의 사각지대에 위치하는 시적 상상은 화자에게 “삐걱거릴 때마다 나는 나를 바꿔 입어야"한다는 주문을 환기시킨다. "겹겹 바닥을 뒹군다, 벗겨도 벗겨도/알맹이면서 껍질인 또 하나의 당신”은 화자의 내면에 육화된 정서를 상징하는데, 억압된 현실과 맞물려 어떤 것으로도 풀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그러나 상상과 결합한 의식은 절망에 대한 순수한 극복 의지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지극히 실존적이다. 살아있는 인간이 무생물인 마트료시카를 의인화해 생명의 유기적 관계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대상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이런 상상은 상충하며 교차하는 이미지들에 의해 모호한 형태로 독자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추동한다.
“공원 모퉁이에 버려진 기억들이 어둠에 묻힐 때/파랗게 수집되는 기분/곧 다시 머리에 싹이 틀 것이다” 구절에서 보듯 마트료시카가 제공하는 이미지는 나약해지려는 화자의 의지를 채찍질하고,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인 순간들을 담금질해 시적 열정을 강화한다. 여기에서 비합리적인 형태로, 오로지 주관적인 어떤‘힘’에 대한 갈망을 꿈꾸는 인형은 화자의 내면을 복사한 초상화와 다를 게 없다.
등 뒤에서 잃어버린 손을 잡는다
6년째 분실한 시간은 용변의 알람으로 시작되었고
지나간 것은 곤두선 채 입체적으로 들린다
희뿌연 안개를 따라
절망을 구르는 굽은 뒤태, 쳐다보기 안쓰럽다
대체로 기분은 색깔이 없어서
흠칫, 유리창에 비친 새들의 부산한 날갯짓에 놀라
안을 살피는 염탐의 자세다
쿵, 터더덕, 둔탁한 목소리로 구르는 안부
흰빛에 에워싸인 LED 등이 빈 계절을 서성거릴 때
사과를 양손에 쥐거나
닳은 무릎으로 움츠린 그녀
입가에 흘린 침을 무덤덤하게 화장지로 닦았다
고통도 식사였던 한때의 그늘을
과감하게 대신 던지는 오늘
스트라이크
마주 볼 수 없는 시선
마른 목소리가 물길처럼 흐른다
누군가의 선택은 둥근 각도로 휘어지고
이름을 잊는 날은 내 표정도 갓길로 샜다
그날 이후,
시간은 맨살로 눕는 방이기도 했다
-「볼링」 전문
한병철은 『리추얼의 종말』에서“오늘날 삶이란 그저 생산하기일 따름”이며, 이제는 “모든 것이 놀이의 영역에서 생산의 영역으로 옮겨”갔다고 지적한다. 위의 시에서 볼링은 놀이가 아닌 의식의 안팎에 발을 들여놓아 실존적 존재로서 맞닥뜨릴 수 있는 대상과, 화자가 바라보는 장소를 복합적으로 배치한 ‘언어의 집’이다. 볼링의 동작을 통해 통시적으로 이해되는 비유를 적재적소에 균배하면서 실제의 삶에서 마주치는 생로병사의 인과성을 형상화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기분은 색깔이 없어서/쿵, 터더덕, 둔탁한 목소리로 구르는 안부/ 흰빛에 에워싸인 LED 등이 빈 계절을 서성거릴 때” 깊은 슬픔에 닿아있는 화자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허상일 뿐임을 주지시킨다. “스트라이크”에 이르는 절망은 곧 죽음을 내포한다. 이를 화자는 “누군가의 선택은 둥근 각도로 휘어지고/이름을 잊는 날은 내 표정도 갓길로 샜다”고 노래한다. 볼링공이 낙하하는 지점은 맨살로 눕는 무덤이면서 허상이 깨지는 집으로 양분된다. 나아가 주체의 실상인‘치매’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르며 어두운 목소리에 빗대어져 적소에 다양한 은유로 배열된다.
사실 시인들이 누리는 시적 상상이라는 꿀도 분명 그만한 시간을 거쳐야 생산된다. 이 시에서 화자가 바라보는 방식은 특수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자폐적 행위가 아니다. 점점 노쇠해 가는 부모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결핍감과, 주체하기 어려운 감정의 과소비에 다름 아니다. 이렇듯 화자가 겪고 감내했을 고통은 시로 육화되어 독자들의 동질감을 한데 묶으며 사회적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빈 날을 신호대기 하듯 기웃거린다
하늘과 땅, 미래와 현재의 가운데서 펄럭이는 놀이
몸이 좌우로 엉켜서 본 세상은
오해하기 쉬운 자세
백하수오 덩굴이 통째로 감나무를 감고 있다
지나가지 않는 뱀이 머리를 내게로 튼다
빗방울, 마른 비명 바짝 말린다
허공에서 뼈대만 남은 사람이 나부낀다
발자국 여기저기 떠다닌다
보성, 화순, 남평, 광주
어깨를 올리면
만세를 함께 부르다 출렁이는 빨랫줄
위태로움이 그녀의 거처였다
차고 강렬해진 바람 쪽으로 흔들리며
안부가 펄럭인다
손끝이 난간을 들었다 놓는다
행상에서 돌아와
얼음물에 손 담가 빨래하던 그녀가
유리창 없는 넓은 마당을 들어올린다
침상에 덮던 흰 광목이 깃발처럼 나부낀다
내 얼굴과 코를 막는 깊은 입맞춤
분명한 슬픔인데, 마른 냄새가 난다
-「빨래」 전문
세계와 소통하고 나를 확장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빨래의 안과 밖은 가시적인 표면과 비가시적 시간의 깊이다. 대상이 견뎌온 시간과 화자가 견뎌온 시간들이 시의 은밀한 속성으로 표상화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기억’은 가시적 대상물인 ‘빨래’의 성질이 아니라 내부세계의 아득한 의식에서 떨어져 나온 사유다. 이때 대상과 의식이 결합되도록 만드는 힘은 물질성과의 합작이지만 자아는 끊임없이 주관성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화자는 자신만의 생각이나 감정을 고집하지 않은 채 주어진 상황이나 조건에 맞춰 적응한다. 다만 그 적응은 분명하고 확신에 차 있으며 화자는 오히려 은밀하게 그 과정을 즐긴다. 그의 시는 이렇듯 물질성에 기반을 둔 이미지와 열린 서정의 품으로 대상을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리는 한바탕 놀음이다. 이때 비유는 사물을 효과적으로 변용해 화자의 정서를 표상하는데 활용되며, 부정적 정서를 긍정의 기제로 변환하는 경우, 시 세계의 영토를 심화하고 확장하는데 기여한다.
임영자는 사물의 추상적 함의를 이미지의 보고인 상상력과 연계해 작품 전체의 유기성을 강화하는데 이번 시집에서 「빨래」는 그 대표적 사례다. 화자의 시적 정서는 구원을 향한 고독한 자기 응시가 핵심이다. “빗방울, 마른 비명 바짝 말린다/허공에서 뼈대만 남은 사람이 나부낀다” 처럼 일상에서 벗어난 빨래는 비명을 자아내거나 뼈대만 남은 사람으로 의인화 된다. 현실에서 일정하게 정주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서성거리는 방황은 단지 시적 언어의 폭이 확장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달점을 추구하는 화자의 갈망이 변수로 작용한다. 그 갈망은 앞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로 돌이켜져 화자가 겪어야 했던 지난한 슬픔과 그 극복의 현장으로 독자들의 탑승을 유도한다.
2. 서정 속에서의 정주
시는 읽고 쓰는 행위를 통해 자아의 재발견과 더불어 인간 본연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이때 자신이 살아온 체험을 바탕으로 한 상처의 기억은 시라는 유형으로 재현된다. 시는 자아와 영혼의 실존적 의미를 함축의 언어를 통해 형상화하는 주관적 장르이다. 또한 창작 과정 속에 성찰과 그에 따른 과제의 극복을 지향하는 만큼 잠재적 치유 효과를 보유하고 있다.
임영자의 이번 시집에서 눈에 띄는 두 가지 특징은 언어미학을 고양시키기 위해 발굴한 다양한 이미지와, 삶과 죽음 등 자연현상에 대응하는 사유의 내밀화를 꼽을 수 있다. 그 이면에는 알게 모르게 부단히 시도된 자기치유의 흔적이 내재되어 있다.
자칫 해독하기 어려운 시들이 새로움을 빌미로 횡행하는 풍조 속에서도 고향이 남도의 끝자락 보성인 임영자는 자연친화적 정서를 서정성 짙은 절제된 언어로 형상화한다. 고향, 자연, 삶의 무게, 중년의 삶에 대한 고뇌,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곡진하게 배어있는 임영자 시의 서사와 정서는 유년의 체험과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머니를 일찍 잃고 아버지를 모시며 외딴 집에서 함께 산 기억들은 조숙하게 내면을 성장시키며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갈망과 그리움을 추동하고 있다. 남도 시 특유의 전통적 서정시와 사회 참여적 리얼리즘, 향토애와 토착적 원체험, 일상적 삶의 지혜가 주조를 이루는 임영자의 시는 본질 지향적 사유와 깊이를 담은 남도 서정시의 원본이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신한 상상의 외피를 걸친 감각의 언어가 다듬어내는 이미지는 서정미학의 내용을 한결 풍성하게 한다.
그의 시와 만날 때는 내면을 관류하는 남도 특유의 '한'과‘情’의 선율을 놓쳐선 안 된다. 부모님에 대한 각별한 기억과 외딴집에서 체화된 원초적 고독은 그가 여자(인간)에서 시인으로 재탄생하는 근원이며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산책길 나무들의 문장을 해독한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트리로 밝힌 전나무
발길에 짓밟힌 채 벼락 맞은 구멍도 보이고
절벽에 매달려 아슬하게 꽃 피운 뒤 자라난 나뭇가지도 보인다
꺾어진 가지 끝에 고인 진물이
기둥이나 서까래가 될 수 있었던
그윽한 냄새의 책장을 넘기면
허기진 아버지의 회고록이 읽혀진다
벌레 먹고 비바람에 찢어진 책장을
가을바람이 넘겨주는데
누군가의 뒷장이 되기 위해 어깨 굽은 풍상이 몇 년인지
아직 따스한 체온이 남아 있는
책 한 권
풍경으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나무를 읽다」 전문 .
“꺾어진 가지 끝에 고인 진물이/기둥이나 서까래가 될 수 있었던/그윽한 냄새의 책장을 넘기면/ 허기진 아버지의 회고록이 읽혀진다.”는 절창은 화자의 숨은 내공을 담보하는 압권이다. 화자가 서 있는 장소는 둘레가 막힘없어 동적이지만 산책길 나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고즈넉하니 정적이다. 이 동정動靜의 시선이 교차하며 연속적으로 쏟아내는 사유의 풍경은 다채롭기 이를 데 없다. 나무가 서 있는 장소는 언제나 바깥이다. 바깥에서 안은 시작되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포착되는 삶의 모든 것들은 각자의 소리로 삐걱거리거나 조율돼 시인에게 그 소리를 받아 적거나 말을 걸도록 부추긴다. 사물의 내면을 응시하는 방식으로 삶의 내력, 시간, 풍경에서 발굴한 이미지를 통해 삼인칭 관찰자의 시선으로 화자는 경계의 너머를 주시한다.
아버지의 존재를 경계 너머가 아니라 경계 안쪽으로 옮겨 옴으로써 자연스럽게 ‘나무’의 존재는 경계 너머가 된다. 이때 경계라는 획일화된 지경을 깨고 두 존재자는 동일시된다. 나무와 아버지를 동질의 생명으로 품어 안는 포용의 순간이 이 시의 순기능이며 본질인 것이다. 고통의 시간 끝에 기둥이나 서까래가 되고 마침내는 고통과 상심 끝에 흘렸을 눈물로 체화되는 아버지의 굴곡진 여정 낱낱 페이지가 한 권의 책으로 완성 된다.“어떤 바람으로 서 있는가”자문하며, “벌레 먹고 비바람에 찢어진 책장을/ 가을바람이 넘겨주는데/누군가의 뒷장이 되기 위해 어깨 굽은 풍상이 몇 년인지”라는 구절로 대변되는 아버지의 생(生)과 사(死) 그리고 빛과 그림자는 어깨 굽은 풍상(風霜)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묻고 규명해 보는 자조적 자세로 귀결된다.
어스름한 저녁을 휘묻이하며
둥글게 여물어가는 알들은
지난한 시간을 매달았다
침묵은 고고해
작아도 자족하며
마른 그림자를 지워가며 거친 땅 품었을 토란
땅속에서 자리 잡지 못한 바람은
까치발 세워
먼 곳을 향하여 손을 뻗는다
젖은 것들은 밖으로 나오고
안을 튼실하게 채운 알맹이
어쩌면
경계 너머의 허기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보성역 올망졸망 늘어선 짐 보따리 옆
소나기를 털어낸 토란대 허리 바짝 세우고 서서
토란을 지키고 있다
-「토란」 전문
사람은 꿈꾸는 대로 살아가지만 예기치 않은 운명과 맞닥뜨려 행로를 바꾸는 경우도 허다하다. 등단 10년 남짓의 화자도 그렇지 않았을까? “마른 그림자를 지워가며 거친 땅 품었을 토란”과“젖은 것들은 밖으로 나오고/안을 튼실하게 채운 알맹이”처럼 일찍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고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의 일을 도와 한때 농사를 짓기도 했던 시인은 뒤늦은 등단을 했다.
시에서 보통 자신에 관한 서술은 자칫 넋두리로 비칠 수 있는데 위의 시는 절묘하게도 그 유혹을 벗어나 오히려 참신한 자아와 만나고 있다. 서정시에서 화자의 개입은 때로 반성적 기능을 행하면서 심리의 평정을 뒷받침해 준다는 사실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어스름한 저녁을 휘묻이하며/둥글게 여물어가는 알들은/지난한 시간을 매달았다.” 는 구절은 그동안 노역과 상심 때문에 흘렸을 눈물 자국을 암유한다. 이처럼 화자는 시라는 매개물을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독자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그들 마음 곳곳에 심어준다. “보성역 올망졸망 늘어선 짐 보따리 옆/소나기를 털어낸 토란대 허리 바짝 세우고 서서/토란을 지키고 있다”는 구절은 서사가 서정을 다독이며 말머리를 연다. 화자는 슬픔으로 굴러가는 보성역 기찻길 옆에서 토란을 파는 어머니, 저물녘 엄마를 마중 나온 부녀가 두 손을 잡고 서성이는 모습을 한 편의 수채화로 그리고 있다. 그 슬픔의 미학은 아래의 시 「월계화」에서 거듭 절제되고 정제된 꽃으로 승화되어 심상의 깊은 곳에서 진한 향기를 발산하는 견실의 뿌리를 뻗는다.
가시를 숨긴 월계화
동그랗게 꺾인 채
구멍 파인 가지
안간힘으로 봄을 붙들고 있다
따끔한 가시에 찔린 살갗
붉은 비명 내지르며
바닥을 짚어야만 일어설 수 있는 그녀
몸 비틀 때마다 연신 숨을 몰아쉰다
천근 무게를 버틴다
통증을 숨긴 월계화
꽃잎이 만개한 순간
나의 중심을 허물며
송이송이 진한 향기를 품었다
*장미꽃의 다른 이름.
-「월계화」 전문
한때 오월을 상징하던 장미는 이제 봄·여름·가을·겨울 가리지 않고 꽃을 피운다. 시의 발견과 인식의 확장이 자연스러운 것은 꽃과 시간처럼 시적 정황이 시인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직관이 빚어낸 좋은 시의 이미지들은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하거나 두려움과 불행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준다. 한 더미의 장미에서도 상상력과 비유법을 동원, 대상과 사물의 저변에 숨은 이미지를 끌어내듯이. 눈에 보이는 것이 풍경이라면 풍경의 배경, 더 나아가 배경을 만들기까지의 배후를 상상에서 끌어내는 것은 일면의 시선을 다면의 입체화로 만드는 심미적 작업으로, 이미지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넝쿨을 길 삼아 떼 지어 피는 장미를 개인의 삶으로 치환해 “하찮은 것들”의 관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으며 그런 삶 속에 진정한 자유가 깃들어 있다는 의미를 일깨워준다. 화자는 길가의 장미 한 송이처럼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는, 즉 고통 끝에 발화한 장미꽃과 다를 바 없는 어머니를 떠올리고 있다. "바닥을 짚어야만 일어설 수 있는" 불구의 몸으로 " 동그랗게 꺾인 채/구멍 파인 가지/안간힘으로 봄을 붙들고 있”는 어머니는 이 땅의 무수한 인고의 상징으로 재현된다. “몸 비틀 때마다 연신 숨을 몰아쉰다/천근 무게를 버”티는 어머니의 고통은 시를 통해 “중심을 허물며/송이송이 진한 향기를 품”는 숭고미로 승화된다.
3. 그늘과 연대하다
아래의 시는 우리의 삶 속에서 펼쳐지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건을 주제로 그 본질적 해법을 제시한다. 길고양이를 통해 드러난,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혹성에 대해 화자는 담담한 어투로 그러나 예사롭지 않게 묘사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원적 천착이며, 종국에는 화자가 화자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동시에 현대사회의 반생명적 무감각에 던지는 항의성 메시지이기도 하다.
눈곱 덮여 한쪽 눈이 사라진 점박이 길고양이 한 마리
사람들을 피해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사라진다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며 깃털을 세우는 밤
어둡고 습한 곳에서 들리는 가르릉 소리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울음은
바짝 발톱을 세운다
곧 밤이 찾아올 텐데
골목 모퉁이 음식물 수거통을 찾아
한 시간째 생선 뼈를 건지고 있다
오른손 내밀어도 쉬이 내주질 않는 발
음산한 냄새를 지우는 어둠의 수심도 깊다
산책할 때마다 살펴주지 못했던 마음이
자꾸 밟히는 저녁
산마루에 붉은 노을이 떠올랐다
-「길고양이」 전문
“눈곱 덮여 한쪽 눈이 사라진 점박이 길고양이 한 마리” 는 “어둡고 습한 곳에서 들리는 가르릉 소리/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울음은/ 바짝 발톱을 세.”우고 있다. 작은 생명에 살을 붙이고 온기를 내어주던 화자의 저녁은 고양이가 염려되는 마음에 자꾸 밟히고 있다.『겹꽃으로 피어나는 손 』이라는 시집의 제목에서 읽을 수 있듯 모든 생명을 경외의 대상으로 읽는 시인은 일찍이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필연적인 운명론을 수용한다.
이 시에서 주요 이미지는 두 가지로 축약된다. 첫 번째는 반전의 이미지다. “고통도 식사였던 한때의 그늘을/과감하게 대신 던지는 오늘/스트라이크” 는 앞에서 언급한 시 「볼링」의‘볼링’공이 단지 던져서 얻을 수 있는 스트라이크 동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화자가 차곡차곡 쌓아둔 고통과 번뇌로부터의 탈출이며 일탈을 지시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두 번째 주요 이미지는 서정성이다. 화자는 언어의 외적 형식을 두뇌에 각인해 자신이 가진 감성과 느낌, 울림을 같은 박자로 동일시하여 되새긴다. 세상에 많은 시인이 있고 많은 시가 있지만 모두가 같은 시선으로, 동일한 언술적 방법으로 시를 기표화한다면 시는 이미 죽었다고 판정해야 한다. 같지만 다른 무엇을 형상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적 대상이나 주제를 풍경이 아닌 배경으로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지금’ ‘여기’에서, ‘현재와 과거’라는 어쩌면 배타적일 수 있는 기억을 상기시키고 현재를 밀도 깊게 사유하는 것을 뜻한다.
작은 실오라기조차 깊숙이 탐색되는 DNA
구멍이 뚫린 채 한꺼번에 박혀
사라진 머리, 탈골된 어깨
가로세로 포개진 웅크린 신원미상의 이름들*
함부로 생을 마감시킨 기억은
아무것도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았다
백골이 된 몸속
수심 깊게 외쳤을 절규와 원망
흙을 감고 돌아
피를 묻힌 총소리 차갑게 박혀 있다
*2019년, 구 광주교도소 지하에 암매장된 5.18 희생자들의 시신이 200구가 넘게 발굴 되었다.
-「행방불명」 전문
시는 언어를 통해 넓고 깊은 강에 노둣돌을 놓는 일이다. 이를테면 시라는 전체적 협업체의 분업체에 해당하는 갈등은 궁극적으로 화합을 전제로 할 때 제 몫을 다한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현대사의 감당키 어려운 비극적 명제인 5.18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간의 편의성에 의지해 명제에 관한 필수불가결한 논의조차 없이 기억을 중단한다면 이 시는 한결 수월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물론 무의식의 심연에 처절히 각인된 불치의 상처는 화자에게 시간과의 무책임한 타협이나 피상적 안일을 허락지 않는다. “함부로 생을 마감시킨 기억은/아무것도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고 “흙을 감고 돌아/ 피를 묻힌 총소리"가 차갑게 박혀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어두운 시대의 유산인 역사적 명제를 내적 시선을 통한 추체험으로 재구성해 뿌리 깊이 잠재된 불안을 소거한다. 과거의 시간에 유예 당하지 않고 긴장과 소란을 감추는 한편 합리적 사유를 통해 작은 몸짓의 고발을 한다. 충격으로 얼룩진 참담한 고통은 뭇 생명과의 심리적 연대로 확장된다.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 고통에 동참하게 된 화자는 이미 주어진 공동체의 과제를 세밀하게 포착, ‘나’ 이외의 삶과 존재들을 향해 시적 자장을 확장해 나간다.‘5월 광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1980년대를 대변하는 키워드였다. 산 채로 백골이 되어 모진 세월을 견디어 온 숱한 이웃들, 현대사의 첨예한 분기점이 된 ‘5월 광주’는 특별한 언어적 수사나 비유 없이도 절실함만으로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한 편의 서정시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가장 명확한 특성은 모든 외계의 것을 주관화하여 그 주관성 속에서 일정한 화해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아도르노 (T. Adorno)는 말했다. 이처럼 화자는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을 본성 그대로 담아내는 동시에 그 안에 자신을 투사하여 질서와 화해를 도모한다. 실천적인 시적 행위를 통해서 그 이면에 자신의 감정과 관념을 반영, 이를 공감의 차원으로 확산시키며 그 지분을 내가 아닌 타자에게로 확장 시키는 것이다.
이곳에서 바람은
산의 뒤꿈치를 밀어 올리며 시작된다
아홉 구비 계곡을 따라 천 년의 그림자 드리우며
적막 쌓여
쉼 없이 울리던 처연한 아기의 울음소리
겹겹 쌓아 올린 기도가
탑이 되고
침묵하던 산 그림자 두 손 모아 합장한다
절 마당 태아령*
바람을 타고
삼도三塗의 강이 객을 맞는다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소재, 매년 제 삶을 마치지 못한 태아령 진혼 예술제가 열린다.
-「대원사」 전문
죽은 어린아이의 영혼(태아령)이 많이 묻힌 곳이 대원사다. 화자는 대원사에 떠도는 어린 영혼들을 생각하며 “찡하게 파고들어 가슴을 울리는 슬픔의 움직임”을 아이들의 처연한 울음으로 재현한다. 그 순간, 삶이 지치고 힘들었던 갖가지 일에서 빠져나와 신성하고 근원적인 말을 받아 적는다. 시적 계시인 셈이다.
위 시에서 화자는 “삼도三塗의 강이 객을 맞는다.” 고 하는데, 그곳이 저승인지 그 너머인지, 아니면 선경인지 확인할 수는 없다. ‘삼도三塗의 강’이 정말로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조차 막연하다. “겹겹 쌓아 올린 기도가/탑이 되고”, “떠난 아이와 아이의 명복을 비는 사람”을 구분하고자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감은 타자의 처지에 대한 동일시로부터 온다. 그 누구도 이별의 고통을 대신할 수 없다. 상처들은 대부분 외부에 의해 즉각적으로 발생한 것이지만 시간이 천천히 지나며 누적되어 오다가 뒤늦게 폭넓은 공감대를 이루기도 한다. 가식적인 수사 따위는 위로가 될 수 없어 여과 없이 마음속을 드러내는 화자의 인간적인 측은지심도 다르지 않다.
4. 감각의 확장
감각적 모더니즘의 선구적 작품을 남긴 이장희는 ‘고양이’를 통해 감각적이고 생동감 있게 ‘봄’의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위의 시에서 화자는 고양이의 ‘털’과 ‘입술’, ‘수염’에서 봄의 이미지를 도출, 봄의 ‘향기’,‘불길’, ‘생기’를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시각(호동그란), 후각(봄의 향기), 촉각(부드러운 고양이의 털) 등이 뒤섞이면서 공감각적 이미지를 낳는다. 이를테면 사유와 경험의 언어적 결실, 리듬이나 숨결 같은 미세한 장치들을 참신한 이미지로 읽어내며 섬세한 감각’과 ‘정서’의 이채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전화기를 들고 골목을 나서면
끊긴 안부가
땅끝을 헤매던 어느 날까지 이어진다
해당화를 꺾어와 내 앞에 흔들어 보이곤 했지
꽃잎을 한 잎씩 떼어내니
하늘하늘 어디론가 사라진 얼굴
문득 뒤돌아보고 있을까
흰 포말 사이에 떠 있는 바다
언뜻언뜻 비추는 물그림자
너는 나를 닮은 듯 바라봤다
바다의 수면처럼 잃어버린 시간은
풍경으로 갇힌다
눈과 눈을 감았을 때
맞닿는다 만진다 움켜쥔다 당긴다 붙인다
두 손안에서 당길 수 없는 것들
속눈썹을 빳빳하게 끼워 넣을 때
아직 거기 푸르게 혹은 하얗게 맺힌
주름진 기억들
-「거울 속으로」 전문
감각은 시적 대상과 접촉하면서 그 촉수를 자신의 경험, 정서 위에 위치시켜 구상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인지적 정서활동과 맥을 같이한다. 이 경우, 이미지는 단순한 상징적 형태로 고착되지 않고 상상력을 촉발하는 구체적 물질과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새롭게 의미를 심화, 확장된다. 거울은 ‘살아있는 현상’으로서의 이미지를 가능하게 한다. 거울 속에서는 다양한 표정의 변화를 통해 무감각을 일깨우거나 혼잣말에 대한 즉답을 들을 수도 있는데, 이는 화자 자신의 상상 속 이야기 혹은 경험은 찡그린 입술이나 속눈썹 빳빳한 환한 웃음의 이미지로 치환된다.
“눈과 눈을 감았을 때/맞닿는다 만진다 움켜쥔다 당긴다 붙인다/ 두 손안에서 당길 수 없는 것들”에서 사실적이면서 풍자적 이미지를 제거한다면 사물에서 나를 떼어놓고 자유분방하게 자아가 확장되는 묘미를 맛볼 수 있다. 굳어져 있는 모듈에서 일탈한 주관적 가치는 객관적 입장에서 보면 정당한 대접을 받기 어렵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식은 대상과 의식 간의 관계를 묘사해, 의식의 변화양상에 따라 극도로 유연하고도 정밀한 묘사를 할 필요를 제기한다. 물질적 이미지는 주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끊임없이 발화의 미학을 통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의 눈길로도 사로잡는 기억들의 정원
자물쇠 걸린 병실의 출입구
출구 막힌 공간 속에서
한숨이 길어질 때
구름이 구름을 벗어나려 소나기를 되뇐다
그늘을 쏟아내는 허공이 출렁거린다
절반이 텅 빈 미궁의 시간은 언제 찾을 수 있을지
잎으로 숨거나
줄기로 휘어져
그림자가 그림자를 덮는다
각을 세운 그녀의 지난날이
뒤척이며
머리 없이 곧추선다
-「행운목」 전문
이야기 시는 다양한 이미지들과 분할, 통합, 재건축과정을 거치며 완성태에 이른다. 임영자 시에서 드러나는 이야기 시는 시인의 내면과 원형적 이미지들이 결합하면서 내면 의식을 바깥 사물의 영역으로 끌어내 논리적 전개를 한다. 이 ‘열린 펼침’은 선험적 경험과 물질성(의식)이 결합해 끊임없이 감각적인 세계를 만들어 낸다. 행운목은 목이 잘린 상태로 줄기를 뻗는 식물이다. “한 번의 눈길로도 사로잡는 기억들의 정원”은 ‘행운목’이면서 또한 삶의 고난과 불행을 함께 해온 고난의 장소를 암유한다.
이미지는 오랜 역사와 가치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핵심적 가치가 아니라 주변부적 표현기제로만 인식되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이미지와 상상력이 원초적 능력이자 창의성과 독창성의 소산임을 입증하며 그 위상을 높여 ‘상상력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이룬 이가 바슐라르다. 그는 이미지와 상상력을 연구하면서 현실과 꿈의 세계를 연결한 것은 감성이고 이 감성은 구체적으로 인간의 삶에 결정적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감성의 세계는 이미지와 상상력을 향토색 곤한 서정의 질그릇에 담아내는 임영자의 시적 발화이기도 하다.
임영자의 시세계는 직관적 통찰과 자연 친화를 중시하면서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를 끊임없이 탐험하는 가운데 교직되는 이미지와 상상력의 결정체다. 그의 시가 다다르고자 하는 시적 풍경의 깊이는 즉흥적 이미지와 심미적 풍경에 국한하질 않고 삶에서 배어 나오는 익숙한 풍경과 존재에 대한 성찰, 삶과 죽음, 명암, 풍경의 형상 재현 등, 다양한 시제와 내용으로 심도 있게 발현된다. 이미지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며 살아 움직이는 시를 낳고, 이러한 주제음들을 촘촘히 되새겨 변주를 꾀하는 임영자는 미래라는 미궁을 향한 새 이미지에의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김성신 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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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연암집』 서문에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을 강조했다. 논어의 온고지신과 맥을 함께하면서도 지신知新을 創新으로, 지知보다 행行(창조성)을 강조한 점에서 새삼 그의 문학적 탁견을 읽을 수 있다. 전통만 고집하고 혁신에 소홀할 때 문학은 쇠퇴를 면키 어렵다. 반면 근본을 잊고 새로움만을 밝힐 경우, 예술의 수명은 잠시의 유행에 그치기 쉽다. 아무리 세련을 가장한 자극적 감각의 언어가 주류를 이루는 세태라고 해도 시의 본령은 서정성에 있고, 불가분의 시적 본질인 자연을 언어의 모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임영자는 이번 시집에서 남도 특유의 서정성을 법고法古로 다진 바탕 위에 질감 어린 상상과 사유를 통해 창신創新을 도모하고 있다. 여기에 감각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절제의 언어를 구사해, 오랜 산고의 결정체인 첫 시집을 남도 시의 소중한 특질이자 자산으로 자리매김한다. - 김규성(시인)
임영자 시인의 첫 시집에서 가장 주목한 것은, 겹눈이라는 말이다. 시집 제목에서도 알수 있듯 겹눈은 한 방향의 눈이 아니다.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눈을 소유했다는 말이며 그것이 시인이 가져야 할 제일의 덕목이다. 세상을 보는 눈이 한 방향이 아닌, 여러 방향에도 본다면 느낌과 울림이나 공감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시의 모티프가 된다. 작품의 전반적 기조는 자연과 삶이라는 현상에 대한 대조적인 관점이다.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꽃에게 꽃이라 불러줄 때, 현상은 내게로 와서 생명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남도 특유의 풍경을 보는 방법과 시선으로 꽃을 부르는 임영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김성신 시인의 서평에서 논한 남도 서정이라는 말을 음미해 본다. 기대감이 가득하다. 「마트료시카」중 하나의 행간이 생각난다. /내가 묻는 바깥이 사라진 질문들/그 잃어버린 바깥의 비밀을 풀어보는 가을이다. 독자에게 널리 회자되길 바라며. - 김부회( 시인, 평론가, 수필가, 아동문학가)
[시인의 말]
마당의 화단을 지켜주는
넝쿨장미와 남천은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이다
단풍이 들고 떨어지기를 십여 해
돌고 돌아
겹꽃으로 피어나는 손을 가만히 가을바람에 흔들어 본다
2025년 늦가을, 임영자

임영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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