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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근 시집 (시간의 우물)202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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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김부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4회 작성일 26-01-11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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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근 시집 (시간의 우물)2026.01


 

양현근 지음

130*210|176쪽|12,000원|2026년 1월 10일 펴냄/ISBN 979-11-6243-667-7 03810 (종이책)

ISBN 979-11-6243-668-4 05810 (전자책)



[추천글]


존재는 경계에서 태어나고, 기억은 경계에서 굳는다.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 시집이 선택하는 방법은 사소한 것들의 윤리, 낮은 자리의 노동, 공동체의 시간을 되살리는 것이다. 기억은 개인의 심리 내부에서만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장소와 습관, 냄새와 기다림 속에서 저장된다. “시간의 우물”은 기억을 ‘나’의 소유물로 좁히지 않고, 살아온 세계가 남긴 공기로 확장한다. 기억과 존재는 서로를 동시에 만드는 관계이며, 그 관계는 늘 경계 위에서 진행된다.

이 시집이 독자에게 남기는 것은 단순한 향수나 따뜻함이 아니라,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버려 왔는가.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바로 그런 질문이다. 내가 “구조”가 되어 가는 동안, 무엇이 내 기억을 굳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굳음 속에서 나는 무엇을 다시 길어 올릴 수 있는가. 그 질문을 억지 해답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우물가에 독자를 세워 놓는다. 물은 어둡고 깊다. 그러나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다른 시간의 물속에서 다시 반짝”인다. 이 믿음이야말로, 이 시집이 끝내 지키려는 확실한 표석이며, 독자가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위로의 방법이다.

-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양현근 프로필


양현근 시인


·1998년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2011년 서울문화재단 창작기금을 받았고, 2024년 《시선 시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수채화로 사는 날』 『안부가 그리운 날』 『길은 그리운 쪽으로 눕는다』 『기다림 근처』 『산벚나무가 있던 자리』 『별을 긷다』 『시간의 우물』 등을 펴냈다.


·문학전문 플랫폼 시마을(http://feelpoem.com) 등을 통해 서정에 뿌리를 둔 현대시의 대중적 확산을 꾸준히 모색하고 있다.


E-mail : poemnet@hanmail.net



시인의 말


오래 걸을수록

단추와 실밥 같은 작고 낮은 것들이

먼저 말을 건넵니다.

물때와 계절은 하루의 기울기를 옮기고

기다림은 나이테처럼 둥글게 깊어집니다.

도시의 소음과 들의 적막 가운데서

물 한 바가지를 길어 올립니다.

그 물속에는

지나치며 놓친 이름들과

오래 남아 있던 손의 온기,

그리고 다시 터벅터벅 걸어가야 할 길이

함께 일렁입니다.



2026년 1월, 양현근


<양현근 시인의 시집 『시간의 우물』 해설>


시간의 경계에서 길어 올린 기억의 지층


황정산 (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 기억과 존재


흔히 기억을 시간의 흔적 정도로 간주한다. 하지만 기억은 훨신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라는 SF 고전 영화가 있다. 진짜 인간과 인조인간을 ‘블레이드 러너’로 활동하는 주인공은 사람의 기억을 분석하여 그 사람이 인간인지 인조인간인 리플리컨트인지를 판별한다. 이 영화의 이런 설정에는 인간의 기억이 한 존재의 많은 것을 규정하고 있다는 철학적 사유가 깔려 있다. 이렇듯 기억은 한 존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양현근 시인의 이번 시집 『시간의 우물』 역시 이러한 사유에 기반하고 있다. 그의 시들에 등장하는 기억은 지나간 시간의 단순한 회상이라기보다 한 존재를 성립시키는 구성 방식에 가깝다. 그의 시에서 시적 자아는 지금-여기에서 고정된 실체로 서 있지 않고, 시간이 남긴 흔적을 몸과 사물과 장소에 받아 적으며 성립한다. 그래서 기억은 단순히 뒤를 돌아보는 행위가 아니라, 내가 무엇으로 굳어 왔는지, 무엇이 나를 지탱해 왔는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 시집에서 기억은 감정이기 이전에 구조이며, 경험이기 이전에 시간의 지층이다. 이를테면 이 시집 2부에 있는 「옹이」라는 작품은 기억의 문제를 신체로 끌어온다. “걸어온 길도, 많이 쓸린 데부터 어둑해진다”는 구절에서 삶은 시간의 누적이 아니라 마찰의 흔적으로 나타난다. 옹이는 상처이면서도 훈장일 수 있지만, 시는 “상처인지 훈장인지, 굳이 묻지 않는다 / 몸이 먼저 기억하고, 기억이 뒤늦게 따라온다”고 말한다. 이때 기억은 의식적으로 회상되는 것이 아니라 신체에 선행한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는 말은, 존재가 이미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기억은 ‘나중에’ 덧붙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몸의 형태로 박혀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시집에서 기억은 늘 경계 위에 놓인다. 경계는 단지 안과 밖을 가르는 선이 아니라, 존재가 스스로 자신을 조정하고 세계와 부딪히는 방식이다. 바둑판의 귀·변·축과 도시의 복도·격자·우편함, 부두의 방파제와 이안류, 가로등이 만드는 원의 안과 밖, 이주와 유배가 바꾸는 주소 그리고 끝내 ‘우물’이라는 수직 통로, 이것들은 모두 세계를 경계로 이해하려는 이 시집의 감각 및 사유와 연결된다. 이 시집 『시간의 우물』은 이런 경계에 서서 우리에게 다음의 물음을 던져 준다. 기억이 나를 만드는가, 내가 기억을 만드는가? 이 시집은 그 물음을 나눌 수 없게 만든다. 기억과 존재는 서로를 동시에 만드는 관계이며, 그 관계는 늘 경계 위에서 진행된다.

좀 더 양현근 시인의 시 세계에 다가가 보자.


2. 경계의 언어와 물의 이미지


이 시집 1부의 시들은 이 시집의 미학적 지반을 이루고 있다.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경계의 언어“이다. 여기서 경계는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론이자, 삶을 버티는 사유의 언어다. 특히 이 시집의 첫 작품 「천지신명께 아뢰오니」는 바둑의 형세를 빌려 경계로 이루어진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초반의 포석은 천지 사방 물길을 잇는

보이지 않는 뿌리줄기요

귀(隅)는 북성의 무릎,

변(邊)은 물비늘 같은 능선이라 하였나이다


...(중략)...


붙이면 젖히라 배웠으나

경계의 뼈마디라, 끊김을 조심하라 들었나이다

젖히기 전에 먼저 제가 들썩이지 않도록

기세를 낮고 단단하게

스스로를 다잡게 하소서


...(중략)...


반상(盤上)의 모든 경계가

오늘도 고요히 당신께 닿나이다

- 「천지신명께 아뢰오니」 부분


이 시에서는 단순한 취미로서의 바둑이 모든 삶의 경계가 진행되는 현장으로 변한다. 시는 “초반의 포석은 천지 사방 물길을 잇는 / 보이지 않는 뿌리줄기”라 말하며, 바둑판 위의 돌 배치가 곧 “물길”이고 “뿌리줄기”라고 선언한다. 이때 물은 움직이는 생명력의 상징이며, 포석은 그 생명력이 흐르도록 길을 놓는 작업이다. 즉, 삶은 충동적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흐름을 잇는 포석을 통해 성립한다. 이어 “귀(隅)는 북성의 무릎, / 변(邊)은 물비늘 같은 능선”이라는 구절은 바둑의 개념을 단지 규칙이 아닌 지형으로 바꿔 놓는다. 귀와 변은 바둑판 위의 위치를 넘어 세계를 이루는 살과 뼈의 굴곡이다. 이러한 지형화는 곧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붙이면 젖히라 배웠으나 / 경계의 뼈마디라, 끊김을 조심하라”는 구절에서 경계는 단절을 불러오는 위험한 관절이며, 따라서 삶의 기술은 단순히 공격과 방어의 문제를 넘어 끊김을 최소화하는 연속성의 기술로 제시된다. 그리하여 마직막에 시인이 천지신명께 청하는 것은 승리의 욕망이 아니라, “기세를 낮고 단단하게 / 스스로를 다잡”는 태도다. 이 낮고 단단함은 이후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서정적 주체의 자세로 반복된다. 경계 위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과잉의 기세가 아니라 절제의 결이다.

이런 경계의 사유는 1부의 다른 시들에서 물의 이미지와 결합하며 확장된다.


소문이 파도에 앞서 부딪쳤다

부표가 옆구리를 치면 말들이 튀어 올랐다

젖은 갑판 위에 목소리가 번지고

갈매기는 새우깡을 물어 하늘로 던졌다


염도는 자리마다 달랐다

소문은 물살 바뀌듯 스스로 방향을 틀었다

신발 속 모래를 털며 당신의 안부를 마저 말리려 했고

방파제 밖 물안개가 이별의 이안류(離岸流)처럼 스쳤다


깃발 아래로 모여든 우리는 각자의 편을 골랐다

고요는 뱃전을 따라 멀어졌고

서로의 얼굴에서 짠 표정을 골라 붙였다

창고엔 라벨만 다른 캔이 쌓였으나

정작 따개는 어디에도 없었다


부표가 다시 한번 울고

안쪽 물결이 먼저 떨렸다

느슨해진 밧줄 틈으로

작은 돛배 하나가 슬며시 미끄러져 나갔다


밤이 들어서야 파도는 제 말을 낮추었고,

항로등 아래 서 있던 우리는

제각기 다른 물빛으로 귀가했다

- 「부두」 전문


이 시는 소문과 이별, 공동체의 분열을 바다의 움직임으로 읽어낸다. “소문이 파도에 앞서 부딪쳤다”는 첫 문장은 말이 현실보다 먼저 도착해 세계를 휘젓는 시대를 정확히 포착한다. 파도보다 먼저 부딪히는 것은 물이 아니라 말이다. “부표가 옆구리를 치면 말들이 튀어 올랐다”는 구절은, 공동체의 말들이 얼마나 쉽게 들끓는지를 보여준다. 물 위에 떠 있는 부표는 방향을 알려 주는 장치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말의 폭주를 촉발하는 장치가 된다. 공동체는 항로를 공유하지 못한 채 “각자의 편을 골”라 서고, “서로의 얼굴에서 짠 표정을 골라 붙”인다. 그 결과 “창고엔 라벨만 다른 캔이 쌓였으나 / 정작 따개는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서 따개의 부재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말은 넘쳐나지만 그 의미를 확정할 실질적인 도구가 없다는 것이다. 공동체는 표면적 선택과 표정만 쌓고, 실제로 막힌 것을 푸는 장치를 잃는다. 그때 “방파제 밖 물안개가 / 이별의 이안류(離岸流)처럼 스쳤다”는 구절은 사람들 사이의 이별이 근본적인 존재의 조건임을 알려준다. 이별은 경계의 바깥으로 사람을 끌어내는 이안류처럼, 사람들을 분리시켜 공동체의 안쪽을 파괴한다.

물은 경계를 짓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며 바꾸기도 한다. 다음 작품에서 물, 즉 비는 이 경계에 대한 사유를 감각적으로 확장해 준다.


아파트 회화나무 그늘에

가로등 하나가 동네의 중심을 만든다

빗발이 사선으로 그 중심을 지난다

노란 원 안에선 비가 선이 되고

원 밖에선 다시 소리로 휘어진다


고양이는 원 밖에서 웅크리고

물웅덩이는 낮은 별자리를 흔든다

한밤의 지도는 이 원을 기준으로 삼는다


스물의 피가 뜨거웠다면

저 빗줄기 속을 맨몸으로 건넜을까

우산의 가장자리에 서서

불빛과 어둠을 반반으로 들었을까


이제 경계의 서늘함도 내 몫이다

젖은 걸음을 이어 붙이며

깜박이는 불빛 속으로 나를 접는다


선은 젖고, 소리는 번진다

불빛은 원을 만든다

오늘은 바깥에서, 잃은 쪽의 이름을 더듬는다

- 「둘레」 전문


“가로등 하나가 동네의 중심을 만든다 / 빗발이 사선으로 그 중심을 지난다”라는 장면에서 중심은 거대한 권력이 아니라 작은 불빛 하나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중심은 비라는 물의 형태를 바꾼다. “노란 원 안에선 비가 선이 되고 / 원 밖에선 다시 소리로 휘어진다.” 같은 비가 안쪽에서는 선이 되고 바깥에서는 소리가 된다. 즉, 경계는 세계의 감각을 변형시키는 장치다. 이때 화자는 과거의 뜨거움을 회상하면서도, 이제는 “경계의 서늘함도 내 몫”이라 말한다. 젊은 날에는 경계를 뚫고 지나갔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경계를 읽고 견디는 자리에 서고자 한다. “젖은 걸음을 이어 붙이며 / 깜박이는 불빛 속으로 나를 접는다”는 구절은 존재가 스스로를 접는 방식으로 경계에 적응함을 말한다. 여기서 ‘접는다’는 것은 포기나 축소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형태의 조정이다. 둘레는 한 개인이 세계의 경계 속에서 자신을 다시 접어 넣는 장면이며, 어쩌면 그 접힘 자체가 우리의 기억을 형성한다.


3. 사소한 것들의 세계와 사랑의 형식


이 시집 2부의 시들은 1부의 시들이 보여준 구조적 긴장을 생활의 미세한 결로 옮겨 표현한다. 이를 통해 시인은 거대한 세계에 맞서기보다, 세계가 스며드는 방식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지금의 여기를 견디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새벽 한 시의 논리」다.

이 시는 ‘논리’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사실상 논리의 언어가 아니라 경계를 보여주는 시간의 감각으로 구성된다.


아직 밤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이르고

하루라고 부르기엔

이미 늦었다

- 「새벽 한 시의 논리」 3연


이 시의 3연인 이 구절은 새벽 한 시를 어떤 정의로도 포획할 수 없는 시간으로 제시한다. 새벽 한 시는 밤과 하루의 경계이며, 인간의 말과 마음이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시간의 지대다.


사과도 변명도

아직 형태가 없다

말들은

숨만 고른다

- 위 시 6연


말이 곧 관계의 도구이자 세계를 여는 ‘따개’(「부두」)임을 감안할 때, 새벽 한 시는 그 도구가 아직 열리지 않은 상태, 혹은 열리지 못한 채 멈칫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보내지 않은 말들이 / 이 시간엔 / 가장 솔직한 / 형태를 가진다”(위 시 7연)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역설적으로 미발송의 말이 진실에 가장 가깝다는 말이다. 이렇게 양현근 시인의 시들에서 진실은 늘 완성된 발화에서가 아니라 보류와 흔적의 여백에서 어렴풋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보류와 흔적으로 남은 진실은 거창하고 추상적인 원리나 규범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사소한 것들을 통해 확인된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나를 받드는 것들」이라는 작품이다.


내 하루를 여미느라

정말 수고했겠지, 실로 하찮은 단추여

출근길 셔츠의 호흡을

한 눈금, 또 한 눈금 묶어 주던 구멍들이여


회의실의 긴장과 팽팽한 눈빛을

말 한마디 새지 않게 걸어 잠그던 실밥이여

버스 손잡이에 대롱거리던

내 체면을 끝까지 붙들던 예의여


점심의 튀김 내음, 야근의 얕은 눌림

그리고 오늘을 단단하게 모으던 고리여

퇴근 무렵이면 박음질 끝에서

하루의 올이 조금 느슨해진다


아, 자잘한 원 하나만 풀려도

말문도 마음도 헐거워지는 이 생활


사소함들이여

너희가 없으면 나는 쉽게 흩어진다

작고 단단한 수공의 신들이여

나는 사소함으로 이어진다

무너질 때마다 그 사소함이 나를 세운다

- 「나를 받드는 것들」 전문


이 시는 존재를 지탱할 근거를 위대한 원리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단추, 단추 구멍, 실밥, 손잡이, 고리 같은 사소한 것들을 “작고 단단한 수공의 신들”로 호명한다. “내 하루를 여미느라 / 정말 수고했겠지, 실로 하찮은 단추여”라는 구절은 생활의 윤리를 완전히 새롭게 만든다. 사소함은 하찮음이 아니라, 하루를 여미는 기술이다. 이어 “말 한마디 새지 않게 걸어 잠그던 실밥”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흔히 체면이나 예의라 부르는 것들이 사실은 일상적 봉합의 기술임을 말해준다. 특히 “아, 자잘한 원 하나만 풀려도 / 말문도 마음도 헐거워지는 이 생활”은 존재의 취약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취약함을 붙들어 주는 것이 사소함임을 지적한다. 이렇듯 이 시가 보여주는 것은 사유의 방향 전환이다. 거대담론이 아니라 사소한 결속이 사람을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형식으로 나타난다.


소리는 다 젖고, 말은 차마 얼어붙는구나

소희야, 눈 내리는 자작나무 숲으로 가자

말보다 마음이 먼저 하얘지는 곳,

우리 발자국이 첫 문장이 되는 자리로 가자


너의 어깨에 내려앉는 눈발,

내 손바닥에 번지는 작은 온기

말보다 앞선 약속이

적막한 우리의 사랑을 파꽃처럼 켜놓으리라


거기서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천천히 풀어

하루의 온도를 맞추리라

달빛은 자작나무 사이로 조용히 걸어오고

우리는 그 빛 아래

태초의 오래된 약속처럼 서로를 안으리라


첫 입맞춤이 하늘에 닿는 순간

겨울은 폭설로 기록되리라

멀리서 오던 길들이

잠시 우리 쪽으로 기울어 쏟아지리라

포옹은 눈보다 부드럽게

우리의 등을 감싸고

한 계절이 거룩하게 우리에게 부복하리라


이 숲에서 사랑은 소란을 모른다

첫눈처럼 낮게, 그리고 끝까지 내린다

포개진 고요가 품 안에 접히고

흰 나무들은 말 대신 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 「자작나무 숲으로」 전문


이 시는 사랑을 아주 서정적으로 그려낸 시이지만, 그 서정은 소란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온도 조절이라는 미세한 기술로 완성된다. “소리는 다 젖고, 말은 차마 얼어붙는구나 / … 말보다 마음이 먼저 하얘지는 곳”이라는 구절에서 사랑은 말의 과잉이 아니라, 말의 무력함을 전제로 시작된다. 말은 젖거나 얼어붙는다. 그러므로 사랑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하얘지는 자리, “우리 발자국이 첫 문장이 되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발자국이 문장이 된다는 말은, 사랑이 언어 이전의 약속에서 출발함을 뜻한다. 또한 “서로의 이름을 천천히 풀어 / 하루의 온도를 맞추리라”는 구절은 관계를 지배하거나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맞춘다’는 태도를 제시한다. ‘맞춤’은 폭력의 반대말이다. “첫 입맞춤이 하늘에 닿는 순간 / 겨울은 폭설로 기록되리라”는 구절에서처럼 폭설과 포옹의 이미지가 겹쳐질 때, 사랑은 하나의 사건을 넘어 계절의 기록 방식으로 확장된다. 사랑은 하나의 격정적 감정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세계의 기후를 바꾸는 기억의 지층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다.


4. 삶의 기울기를 읽는 법


3부의 시들에서는 개인의 삶을 사회적 현실의 차원으로 확장된다. 다음 시가 이런 경향을 잘 대변해 준다.


남대문 시장, 점심 무렵

사람들이 골목마다 출렁이고

튀김과 국밥 내음이 섞인다


그 붐빈 바닥에 한 사내가 몸을 붙이고

두 팔로 삐걱이는 리어카를 당겨

골목마다 평생을 옮겨 놓는다


사람들은 무리 지어 밥집을 드나들고

상인들은 호객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의 낮은 자리엔

시선이 스쳐갈 뿐, 길게 붙지 않는다


돌의 사잇길에 돋는 새순처럼

길바닥 한 귀퉁이에서

그의 팔은 묵묵히 다음 끼니를 잡아당긴다


손바닥의 굳은살은

골목 모서리보다 더 단단하고

돌바닥에서 배운 법대로,

어깨뼈에 가느다란 잎맥 하나가 선다

해거름이 그 맥락을 더듬어 읽는다

- 「석부작」 전문


이 시는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노동을 한 장면으로 압축한다. “남대문 시장, 점심 무렵”의 혼잡 속에서, 한 사내가 “두 팔로 삐걱이는 리어카를 당겨 / 골목마다 평생을 옮겨 놓는다.” 이 노동은 거대한 서사로 장식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은 “스쳐갈 뿐, 길게 붙지 않는다.” 그러나 시는 그 낮은 자리를 “돌의 사잇길에 돋는 새순”에 비유하며, 노동을 강인한 식물의 생명력으로 다시 읽는다. “돌바닥에서 배운 법대로, / 어깨뼈에 가느다란 잎맥 하나가 선다 / 해거름이 그 맥락을 더듬어 읽는다.” 여기서 노동은 인간만의 행위가 아니라, 돌바닥과 어깨뼈와 잎맥이 함께 만드는 생명 활동이다. “해거름이 그 맥락을 더듬어 읽는다”는 표현은, 시가 인간 중심의 시선을 내려놓고 시간과 빛의 관점에서 노동을 재인식하는 것을 보여 준다. 이렇게 이 시는 낮은 자리를 ‘낮은 것’으로 고정하지 않고, 세계의 다른 감각으로 옮겨 놓는다.

이 시집에서 3부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은 단연 「기울기」다.


푸른 쪽도 아니고 붉은 쪽도 아닌데

현관 신발은 습관처럼 늘 한쪽이 먼저 닳는다

책장은 햇빛 쪽으로 살짝 기울어

가벼운 문장부터 먼저 떨어뜨린다


빗물받이는 한쪽 물때만 기억하고

장롱 손잡이는 손이 닿는 자리만 반질거린다

카트 바퀴는 자꾸 같은 모서리로 달아나고

머그컵의 실금은 한쪽 입술만 데운다


더 이상 불후의 사랑 같은 건 없고

불멸의 애인도 멸종한 지 오래,

모든 건 기울기를 잘못 읽은 탓

그 치사량의 오독을 어제라고 불렀다


블라인드가 사선에서 멈추던 날,

햇빛은 오후 서너 시쯤 한동안 머물렀고

그늘에서 그 이유를 더듬었다


생계를 걱정하는 동안

이마는 비스듬하게 또 다른 기울기를 만들고

끝내 우리는

한쪽으로만 조여지는 나사였다

- 「기울기」 전문


이 시는 생활 사물들의 비대칭을 통해 삶의 구조적 모순을 얘기한다. “현관 신발은 습관처럼 늘 한쪽이 먼저 닳는다 / 책장은 햇빛 쪽으로 살짝 기울어 / 가벼운 문장부터 먼저 떨어뜨린다.” 여기서 기울기는 물리 현상인 동시에 삶의 습관이고, 삶의 편향이다. “빗물받이는 한쪽 물때만 기억하고 / … 머그컵의 실금은 한쪽 입술만 데운다.” 모든 사물은 한쪽으로만 닳고, 한쪽만 기억한다. 즉, 기억 자체가 편향적으로 굳는다.

이어지는 구절은 이 시집 전체의 비판적 시선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건 기울기를 잘못 읽은 탓 / 그 치사량의 오독을 어제라고 불렀다.” 치사량이라는 과격한 단어는 오독이 단순 실수가 아니라 삶을 죽이는 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는 그 오독을 어제라고, 즉 지나간 것으로 덮어 버리며 계속 살아간다. 이때 이 시가 묻는 것은 명확하다. 우리가 반복하는 실패는 사실 기울기를 읽지 못한 탓이며, 그 기울기는 이미 사물과 몸에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 결국, 시인은 “끝내 우리는 / 한쪽으로만 조여지는 나사였다”라고 결론 내린다. 나사는 조여져야 고정되지만, 한쪽으로만 조여지는 나사는 비틀린 고정이다. 여기서 고정은 안정이 아니라 왜곡이다. 이렇게 『시간의 우물』의 시들은 이런 왜곡된 고정의 세계에서, 기억이 어떻게 굳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길 위의 고백」은 떠도는 삶을 자서전처럼 기록하면서도, 스스로를 미화하지 않는다. “역마살이 끼어 / 나는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였네”로 시작하는 고백은 운명론처럼 보이지만, 곧바로 “스무 해쯤, 생계가 어깨에 얹히고 / 가난한 별 하나가 등을 떠밀었네”로 현실의 원인을 밝힌다. 이동은 낭만이 아니라 생계의 압력이라는 것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하숙집 창가의 달빛을 줍느라 / 나를 다 썼네”라고 말한다. 달빛은 아름답지만, 그것을 줍는 일은 나를 다 소비하는 일이다. 서정은 생계와 가난의 마찰 속에서 소진된다. 그러나 그 소진 속에서도 시인은 “장독의 비릿한 장내와 마당에 남은 햇살, / 아까시 그늘 속 꿩 울음을 / 한 움큼 받아 적으려 하네”라고 말하며, 결국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기록은 존재의 마지막 저항이자, 기억의 우물을 파는 일이다.

「겹치는 주소」는 도시적 고독을 주소라는 상징으로 구조화한다. “아래층 노인은 하루 네 번 창문을 연다 / 그때마다 눅눅한 냄새가 난간을 타고 오른다 / 왜 하필 네 번인지는 끝내 묻지 못한다.” 이 장면은 도시 공동체의 단절을 정확히 보여 준다. 냄새가 올라오지만 이유는 묻지 못한다. 즉, 감각은 공유되지만 의미는 단절된다. 복도는 “격자처럼 차례로 켜”지고, “빛살들은 서로를 보지 못한 채 / 저마다의 칸만 비춘다.” 여기서 ‘칸’은 삶의 주소이며, 동시에 감옥 같은 분절이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 / 복도 불빛이 내 주소를 옮겨 놓는다”는 마지막은 섬뜩하다. 주소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복도의 불빛이라는 사회 시스템이 옮겨 놓는다. 존재는 시스템에 의해 배치되고, 기억은 그 배치의 흔적으로 굳는다. 3부의 시들은 이렇게 삶의 기울기와 배치의 폭력을 응시하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도 기록을 멈추지 않는 태도를 견지한다.


5. 공동체의 기억과 우물의 상상력


이 시집 4부의 오면 드디어 제목인 “시간의 우물”에 도달한다. 여기서 “우물”은 기억의 원리이며 형식이다. 우물은 저장과 회복의 장치다. 또한, 우물은 수직의 시간을 담고 있다.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래에 고이고, 아래에 고인 것이 다시 위로 길어 올려진다. 4부의 「시간의 우물」 연작은 이 수직의 시간을 마을의 장면들로 구현한다.


길 건너 미루나무에서 풀려난 바람이

모래를 부풀려 하늘에 매단다

길은 바랜 장부에 발자국을 적고

곧 흙으로 덮는다

아이들은 딱지를 날리고 구슬을 굴리며

주머니 속 우주를 꺼냈다 넣었다


하얀 망초꽃은 당숙 할매 머리칼처럼 흔들리고

맨발은 달궈진 모래 위에서

별빛 같은 흙알갱이를 흩뿌렸다


산그림자가 내려와 어둠을 눕히면

동구 밖 미루나무 그림자는

어린 울음을 베고 길게 늘어졌다


그날의 웃음은 논둑 너머로 흘러갔지만

지금도 모래알 속 잔별처럼 깜박인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의 물속에서 다시 반짝인다

- 「시간의 우물 1」


“길 건너 미루나무에서 풀려난 바람이 / 모래를 부풀려 하늘에 매단다”는 장면은 기억의 작동을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바람이 모래를 하늘에 매단 장면은, 사라질 것들이 잠시 떠올라 반짝이는 순간이다. “길은 바랜 장부에 발자국을 적고 / 곧 흙으로 덮는다.” 기억은 기록되지만 곧 덮인다. 그러나 덮인다고 끝나지 않는다. “그날의 웃음은 논둑 너머로 흘러갔지만 / 지금도 모래알 속 잔별처럼 깜박인다.” 사라진 웃음은 모래알 속 잔별로 남는다. 이때 중요한 결론이 나온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다른 시간의 물속에서 다시 반짝인다.” 이 시의 기억에 대한 사유는 여기서 완성된다. 기억은 삭제가 아니라 저장이며, 반짝임은 다른 시간의 물속에서 다시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물은 과거를 불러오는 통로이자, 현재를 재구성하는 장치다.

연작 2와 3과 4는 공동체의 생활 장면을 통해 기억의 사회성을 보여준다. “낡은 보따리를 멘 어르신들이 모여 / 서로의 기침을 나누”는 장면, “쌀포대끈이 허리를 감고 / 비닐봉지엔 미나리 물이 살짝 배”어 있는 장면은 기억을 관념이 아닌 냄새와 촉감으로 만든다. 기억은 이런 물질적 흔적 속에 저장된다. 연작 3에서 “만수리 입구 팽나무” 아래 노인들은 “바람 속에 말을 묶어” 둔다. 말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묶이고, 그 묶인 말들이 그늘로 흘러든다. 그리고 “그늘은 그림자가 아니라 / 세월을 잠시 눕히는 우물바닥이었다.”는 빛나는 표현이 나온다. 그늘을 우물바닥으로 바꾸는 이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우물은 물만의 저장고가 아니라, 세월을 눕혀 잠시 쉬게 하는 공간이다. 공동체의 기억은 이렇게 세월을 눕히는 그늘에서 성립한다.

기억의 공동 저장고를 상징하는 작품이 「팽나무 아래」다. 팽나무는 마을의 당산나무로서 수백 해 세월을 맞는다. 시는 이것을 장식적 상징으로 쓰지 않고, 기능으로 작용하게 한다. “여기는 마지막 자리, / 만장을 앞세운 상여가 들고 나는 문턱”이라는 구절에서 팽나무 아래는 삶과 죽음의 경계이며, 공동체의 통과의례가 반복되는 자리다. “꽃상여는 팽나무 밑을 한 바퀴 돌아 / 울음 몇 소절을 가지에 매달고 갔다.”는 표현은 슬픔이 사라지지 않고 장소에 걸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늘은 남고, 노래는 건너간다.” 남는 것(그늘)과 건너가는 것(노래)의 대비는 기억의 원리를 설명한다. 노래(사건)는 건너가지만, 그늘(장소의 흔적)은 남아 기억을 저장한다. 이 시집의 표제이고 또 중요한 상징인 우물은 바로 이 남는 것들의 형식이다.


북창을 건너온 햇살이 서가에 깔린다

책 한 권을 뽑자, 오래 묵은 시간이 배어

잔먼지가 가볍게 일어난다


두꺼운 원서에 남겨진 흐린 밑줄이

누군가의 위독하던 청춘과

골목 모퉁이, 발목이 아픈 연인들을 불러내고

둘의 시간을 희미하게 꿰맨다


오후가 창틀에 기대 선다

창밖, 케이블카 한 줄이

하늘의 봉합선을 느리게 당긴다


밑줄의 미열이 아직 남은 탓,

책을 덮자 공기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닫힌 표지 위에

두 시간이 조용히 포개진다

- 「남산도서관」 전문


이 시는 공동체 기억이 개인에게 다시 돌아오는 방식을 다른 층위에서 보여준다. 책 한 권을 뽑자 “오래 묵은 시간이 배어 / 잔 먼지가 가볍게 일어난다.”고 한다. 여기서 먼지는 시간의 물질이다. 또한 “두꺼운 원서에 남겨진 흐린 밑줄”은 누군가의 청춘과 연인의 시간을 불러낸다. 여기서 밑줄은 우물의 두레박이다. “밑줄의 미열이 아직 남은 탓”이라 생각하고 책을 덮자 “닫힌 표지 위에 / 두 시간이 조용히 포개진다”. 개인의 시간이 타인의 시간과 포개지는 순간, 기억은 개인의 소유를 넘어 공유되는 지층이 된다. 도서관은 우물의 또 다른 형태다. 책 속의 시간은 고여 있고, 우리는 그것을 길어 올린다.

「사랑의 지층」은 4부의 우물 상상력을 사랑으로 확장한다. “입맞춤 하나가 이렇게 굳는 동안 / 우리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사랑을 순간이 아니라 퇴적의 과정으로 이해한다. “파도의 혀끝에 닳아 가며 / 너의 낱말을 잠깐 배웠다 / 밀려오고, 물러가고, 다시 밀려오는 일”이라는 구절에서 사랑은 반복적 파도이며, 그 반복이 지층을 만든다. 그리고 결론은 분명하다. “너에게 닿기까지도 / 퇴적의 세월만큼이 걸린다”. 사랑은 빠른 도달이 아니라 오래 쌓이는 지층이다. 기억이 굳는 방식과 정확히 대응한다. 그래서 사랑은 우물의 다른 이름이 된다. 오래 고이고, 때가 되면 길어 올려지는 것이 바로 그 사랑의 방식이다.


6. 맺으며


『시간의 우물』은 기억을 감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기억은 이 시집에서 경계 위에서 굳어 가는 구조이며, 동시에 그 구조 속에서 끝내 길어 올리는 회복의 상상력이다. 1부의 시들은 바둑판의 언어로 세계의 형세와 경계를 세우고, 물의 이미지를 통해 공동체의 의식과 정서의 흐름을 보여준다. 2부의 시들은 사소한 것들의 세계를 통해 존재를 지탱하는 섬세한 감각과 미시적 사유를 제시했고, 우리 삶에 깃들어 있는 경계의 폭력을 역사와 현실로 겹쳐 보여주었다. 3부의 시들은 노동과 가난, 이동과 고독 속에서 삶의 기울기를 읽으며, 기억이 한쪽으로만 닳아 가는 세계의 비대칭을 응시했다. 그리고 4부는 마침내 우물이라는 형식으로 공동체의 시간, 장소의 그늘, 도서관의 책, 사랑의 정서적 퇴적물 등을 기억의 지층 속에 배열해 보여주었다.

존재는 경계에서 태어나고, 기억은 경계에서 굳는다. 그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 시집 『시간의 우물』이 선택하는 방법은 사소한 것들의 윤리, 낮은 자리의 노동, 공동체의 시간을 되살리는 것이다. 기억은 개인의 심리 내부에서만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장소와 습관, 냄새와 기다림 속에서 저장된다. 『시간의 우물』은 기억을 “나”의 소유물로 좁히지 않고, 살아온 세계가 남긴 공기로 확장한다. 기억과 존재는 서로를 동시에 만드는 관계이며, 그 관계는 늘 경계 위에서 진행된다.

이 시집이 독자에게 남기는 것은 단순한 향수나 따뜻함이 아니라, 곤혹스러운 질문이다. 나는 무엇을 지키며 무엇을 버려 왔는가. 나를 지탱해 준 것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바로 그런 질문이다. 내가 “구조”가 되어 가는 동안, 무엇이 내 기억을 굳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그 굳음 속에서 나는 무엇을 다시 길어 올릴 수 있는가. 『시간의 우물』은 그 질문을 억지 해답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대신 우물가에 독자를 세워 놓는다. 물은 어둡고 깊다. 그러나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 다른 시간의 물속에서 다시 반짝”인다. 이 믿음이야말로, 이 시집이 끝내 지키려는 확실한 표석이며, 독자가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릴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위로의 방법이다.



황정산 : 1992년 『창작과비평』으로 평론 활동 시작. 2002년 『정신과표현』으로 시 발표. 시집으로 『거푸집의 국적』, 저서로는 『주변에서 글쓰기』, 『소수자의 시 읽기』 등이 있다. 현재 계간 『상상인』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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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림 근처/ 양현근


밤늦은 시간 버스정류장에서

취객 몇이 비틀거리는 방향을 서로 가누고 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버스는 올 것인지

기다리는 버스는 대체 오기나 할 것인지

알려주거나 물어오는 이도 없고

누군가는 기다림을 접고 정류장을 빠져나가고

또 누군가는 무작정 기다린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환한 이마,

누군가의 서툰 기별이 사뭇 그립기도 한 시간

발을 헛디딘 활엽들이 사그락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불빛을 세우기 위해 차도로 내려선다

목을 길게 늘려도 계절은 아직 제 자리

한 계절 돌아와도 다시 제 자리

한때 누군가가 그토록 간절했던 시간들

환했던 우리들의 스물이거나 서른하고도 몇이거나

이제는 모두 서둘러 떠나간 정류장에서

세상과 불화한 담배꽁초만 수북하니 뒹구는데

맨발로 서 있던 기다림의 근처

바퀴 울음소리 캄캄하게 젖어가도록

아직도 망설이는 사람들 그믐처럼 깊어가고

가로등 그림자가 어두워진 발등을 베고

고단한 몸을 가만가만 누이고 있다


-양현근 시집 『기다림 근처』(문학의 전당, 2013년)에서


(시감상)


기다린다는 것은 그나마 좋은 일이다. 기다릴 대상이 있다는 것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의 모습에서, 목적지가 있다는 것에서. 기다림의 근처에는 많은 것들이 웅크리고 있다. 잃어버린 나의 계절과 시간, 화려했던 시간의 낡은 영상들, 그리고 작년 가을처럼 빛날 올해 시월의 어떤 날. 모든 기다림의 근처에는 기다림이 존재하고 그 기다림의 대상은 어쩌면 ‘나’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 가을, 서툰 기별이라도 온다면 좋겠다. 더 이상 기다리지 않게.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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