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11 / 김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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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69회 작성일 22-04-27 14:02본문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11
김신용
울음에는 뿔이 있어야 한다고, 명치끝을 쿡 찌르고 들어와
막힌 벽을 뚫고 바위의 땅을 경작하는 쟁기 같은 뿔이 있어야 한다고
지난날, “누가 우주를 노래하라 하는가?”라는 시에서 쓴 적이 있다
나는 그 시를 시집에도 넣지 않고 까맣게 잊어버렸었다
그런데 오늘 묵은 원고를 뒤적이다 그 시를 발견하고는, 아연해진다
알코올중독의 지게꾼 아비의 시신을 문 밖에 내어놓고, 봉제공장에서 찾아온 어린 딸이
가마니에 덮인 주검을 경찰 앰뷸런스가 싣고 가는, 그 길바닥에서의 장례를
빈민굴의 골목에 숨어 야위고 지친 몸 떨며 지켜보고 있을 때
소리개 한 마리 공중에 높이 떠 있는 것, 저문 하늘을 하염없이 기러기 날아가는 것
그것을 울음이라고 슬픔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라고 쓴, 시
젖먹이가 구걸의 소도구로 일당에 팔려가고, 그 아이의 어미인 늙은 창녀가
빈민굴의 더러운 골목에서 벌거벗은 채 뒹굴며 발광을 하고
날품팔이 주정꾼들이 소주병을 깨어들고 제 뱃거죽을 북 긋고
그 상처에서 햇살이 붉은 혀를 날름일 때,
저녁 개밥바라기로 뜬 저 별, 누구도 목을 축인 적 없어 더욱 만삭으로 부푸는, 달의 물―.
그것을 눈물이라고, 폐부를 그렁이는 울음일 수 없다고 쓴, 그 시
나는 왜 그 시를 버렸을까? 서툰 형상화 때문이었을까?
그 ‘울음의 뿔’이 내게도 무거운 짐처럼 느껴져서일까?
그래도 그 시를 찢어버리지 않고 책상 서랍 깊숙이 묻어 두었다는 것은
그 울음을 잊고 싶지 않다는, 버리고 싶지 않다는 내 무의식 같아서
오늘, 혼자 중얼거린다. 그래, 울음에는 뿔이 있어야 한다고―,
명치끝을 쿡 찌르고 들어와 막힌 벽을 뚫고 바위의 땅을 경작하는, 쟁기 같은―
의식이 부러지고 정신의 살거죽이 문드러져도, 다만 우직하게…
되새김질의, 그 한없는 반추처럼 돋아나는 뿔이―.
―《문장 웹진》 2020년 9월호
1945년 부산 출생
1988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버려진 사람들』 『개 같은 날들의 기록』 『몽유 속을 걷다』
『환상통』 『도장골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잉어』 등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1,2』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 등
2005년 제7회 천상병문학상, 2006년 제6회 노작문학상,
2013년 제6회 시인광장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제1회 한유성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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