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을 기행하다 / 한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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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을 기행하다
한정원
무진으로 가는 길이 있다. 안개는 2층에서 십 분마다 출발한다. 햇빛을 스카이 큐브에 싣고 창문을 열면 사람과 부딪치는 갈대숲의 초콜릿 냄새, 무진으로 가는 캡슐은 정원에서 단추를 누르고 무중력으로 정차 없이 날아간다.
마을 끝에서 당신의 생애를 듣고 다문 입에서 다 아문 상처의 자리를 기록하면 녹음실에서 번져 나오는 피아노 소리, 무진의 뜰은 발목부터 환하고 귓가에 흐르는 물소리는 우물까지 퍼져간다.
무진에 올 수 있었다니, 이제 안개는 안개를 걷어내고 소설은 결말을 잊어버린 채 현재를 쓰고 있다. 나는 오늘 부족국가에 온 듯 팔에 꽃잎 문신을 새겨 넣고 아픈 속살로 노래한다.
당신의 등을 따라가면 마침내 얼굴과 마주치듯 데본기의 나비를 따라 가면 원형으로 돌다가 제자리로 오는 무진, 고향을 만든 당신이 시력을 찾은 동물처럼 발자국 소리를 더 크게 내며 중얼거린다. 어둠보다 짙은 안개가 정확한 발음을 들려주고 있다.
―계간 《다시올文學》 2022년 가을호

1955년 서울 출생
수도여자사범대학교와 세종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졸업
199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의 눈빛이 궁금하다』 『낮잠 속의 롤러코스터』
『마마 아프리카』 『석류가 터지는 소리를 기록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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