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덕 시집 <새, 블랙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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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7회 작성일 20-02-25 09:26본문
겨울 저녁
겨울이므로 난해하다
저녁이므로 수상하다
하얀 뼈들의 조립, 겨울
수많은 기호의 어스름, 겨울
내 바깥 풍경이 안 풍경을 만나
갈 데까지 갔다
회색의 사각지대
차디찬 손
점으로 박힌 집
눈동자가 눈동자를 밀어내는
극지체험이라고 말하면
이 어두움을 얼음 뼛속의 찬가로 풀이할 수 있을까
수면양말
겨울이 내다 버린 개
추위와 외로움을 생식으로 먹는 떠돌이
추운 것과 외로운 것은 하나의 색소를 지녔다
그 하얀 피의 통로
이곳은 어디, 어디쯤인가
익혀온 바닥에서 눈보라가 친다
어떤 손끝도 닿지 않는 한데다
이런 기분은 밑이 빠진 채 고약하다
그렁그렁한 분위기로 나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사라진다
누군가의 심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게 바로 나라면
누군가의 말꼬리조차 붙잡을 수 없다면
내 심장이 걸레뭉치처럼 바닥에 던져진다면
내 말이 막힌 출구에서 겉돈다면……
춥고 외로운 서사들이 잠을 보챈다
눈을 뜨고도 쏠려가는 잠, 차가운 피와 함께 있어도 따뜻하게 흘러내리는 잠
두툼한 털, 넓은 품, 익살스러운 눈사람인 잠의 숙소에서
야성의 본능을 잊어버린 개
겨울, 차가운 누군가의 이름으로 지어진 성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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