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정 시집 『라데츠키의 팔짱을 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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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스모스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45회 작성일 19-11-01 01:08본문
라데츠키의 팔짱을 끼고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다녀오는데 구름나무에 은행비가 내린다
무던히도 사계를 버티며 통증을 파도타기 하던 독신귀족나무는
할 말이 아직 많은데 수액을 잃어버린 채 낯선 곳으로 혼자 가려다
비행기 좌석을 나란히 예약했는지 은행 두 알 내 어깨 위에 얹어놓고 간다
영혼은 3막 3장 다음 붙임줄을 해독하는 행진이라고
남은 신명을 어쩌지 못해 셰익스피어의 오텔로처럼 외치다
못다 부른 노래 지휘봉에 실어 영광과 희망의 나라로
피아니시시모(ppp)를 타고 포르티시시모(fff)를 건너고 있다
다시 만날 땐 너의 웃음보따리가 더 커야 해
마지막 말을 품고 가라앉는 눈시울을 서로 올린다
연두 싹 돋는 무릎으로 발맞춰 걷는다
화엄사 일주문 지나면
쉬어가라 옷깃 잡던 만월당 동백나무 아래선
휴休, 그림자가 경전이다
낯선 얼굴들이 법문이다
산문을 지나 너른 마당 올라가면
이제까지의 인연은 불이문不二門
돌항아리에 고이 담아
더 이상 엮지 않고 반듯하게 걷는다
만개한 붉디붉은 꽃 한 송이가 해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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